내년 상반기 일부 국민들에게 디지털화폐(예금 토큰)가 지급된다. 국고보조금을 수령하는 일부 국민과 사업자들에게 현금·바우처 대신에 디지털화폐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보조금을 엉뚱한 곳에 쓰는 것을 막고 행정비용·금융비용 낭비도 막을 수 있다. 공공부문에서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는 세계 최초의 사례다. 보조금은 물론 소비쿠폰·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대신에 디지털화폐로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공공부문 도입 세계 최초 2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과 손잡고 내년 상반기 이 같은 내용의 디지털화폐·블록체인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화폐는 한국은행이 연구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유사한 개념이다. 기재부는 한은이 구성한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디지털화폐를 내년 국고보조금 일부 사업자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이 같은 디지털화폐는 아이폰과 갤럭시를 비롯한 스마트폰의 전자지갑에 담긴다. 가치는 기존 통화와 가치가 연동되고 한은의 디지털 장부인 블록체인으로 관리된다. 한은은 블록체인으로는 디지털화폐 거래를 실시간으로 체크·관리할 수 있다.
CBDC와 다른 것은 사용처가 제한된다는 점이다. CBDC의 경우 현금처럼 어디에서든 사용이 가능하지만 정부의 디지털화폐는 국고보조금 관련 수급자·사업자 사이에서만 활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설비투자 관련 국고보조금을 디지털화폐로 받을 경우 이 화폐를 건설·자재업체처럼 지정된 사업 거래처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보조금 용도 밖으로는 쓸 수 없는 만큼 부정 수급 사례도 막을 수 있다. 올해 정부 예산의 16.7%인 112조3000억원이 국고보조금이다. 지난해 부당한 방법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아 쓴 건수가 630건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산업용 시제품 제작 지원금과 연구개발(R&D) 지원금 명목으로 보조금을 받아 놓고 술자리 비용을 결제하는 등 사용이 제한된 곳에서 쓰는 경우가 이어졌다. 정부 관계자는 "디지털화폐로 지급하면 보조금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며 "보조금 남용을 막으며, 자동화된 관리 기능을 통해 낭비와 부정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조금 지급을 위한 행정비용 낭비도 막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조금은 통상 은행을 거쳐 사업자 계좌에 입금된 뒤에 재차 거래처에 지급된다. 대금 정산 과정에서 은행·카드사·전자결제대행사(PG사)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관련 수수료도 일부 빠져나갔다. 하지만 디지털화폐 체계에서는 정부가 보조금을 바로 수급자와 사업자, 거래업체의 스마트 지갑에 입금할 수 있다. 그만큼 행정비용을 아낄 수 있고 지급 절차·시간도 단축된다.
구윤철·이창용 '경제 투톱'도 성패 주목 정부는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디지털화폐의 사용처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온누리상품권이나 지역화폐 등도 디지털화폐로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정책 효과도 높일 수 있다. 특정 지역이나 소상공인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폐를 설계하면 지역·소상공인 부양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다. 중고거래 등 개인 간 거래와 가맹점 허위거래(카드깡) 등의 부정 사용도 걸러낼 수 있다. 디지털 신원확인을 기반으로 각 국민에게 지급된 디지털 지갑을 통해 자동 지급할 수 있는 만큼 지급 속도도 빠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은 총재도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다. 구 부총리는 디지털화폐 도입으로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책의 실효성도 제고할 수 있는 만큼 적극 추진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도 CBDC 도입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이 사업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