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1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을 만나 “한국은 차세대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관심이 많다”며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이 많고, 세계 시장에서의 활약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SMR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2층 집무실에서 게이츠 이사장을 30분간 접견해 이같이 말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과 함께 제3세계 국가에 백신을 보급하는 등 국제 보건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방한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SMR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전력 수요 증가에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한국이야말로 SMR의 강자가 될 수 있다”며 “우리 기업이 많이 준비하고 있고, 해외 시장에서도 한국의 SMR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접견 시간이 길지 않았던 만큼 구체적인 협력 논의가 이뤄지진 않았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SMR은 대형 원전보다 작은 소형 원전이다. 설치 장소의 제약이 적은 데다 경제성도 확보돼 전세계 빅테크 기업들의 관심이 높은 발전원이다. 게이츠 이사장이 창립한 미국 SMR 개발업체인 테라파워는 와이오밍주에 SMR을 짓고 있다. 국내에선 ‘SMR 파운드리’로 꼽히는 두산에너빌리티가 뉴스케일파워, 테라파워 등에 기자재를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조인트벤처(JV) 형태로 현지 원전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이 한미 정상회담 의제에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강 대변인은 “검토한 바는 있지만, 최종적인 협상안에 실릴지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국익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게이츠 이사장에게 “백신 개발이나 친환경 발전 시설 개발로 인류를 위한 새로운 공공재 개발에 나서셨는데, 참 존경스럽다”며 “지구와 지구인 전체를 위한 공공 활동에 경의를 표하고, 대한민국 정부도 함께할 방법을 최대한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한국의 바이오 기업과 함께 세계 보건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답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한국의 바이오사이언스 제품들은 경이로운 수준”이라며 “국제백신연구소의 연구부터 시작해서 SD바이오센서, SK, LG, 유바이오로직스까지 10년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작았던 한국의 이 산업들이 너무나 크고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기업들의 제품을 사용하고, 직접 다룰 기회가 많이 있었다”며 “특히 코로나 백신이나 진단 기기 등이 좋은 역할을 했다”고 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오는 25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잘 나누라”고 덕담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이 대통령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슬기롭게 잘 대화하겠다”고 화답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