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없어요" 결혼반지 팔아 키운 명품제국…주가 휘청인 까닭 [걸어서 세계주식 속으로]

입력 2025-08-31 07:05
수정 2025-08-31 10:22
세계 2위 럭셔리 기업 스위스 리치몬트 그룹 [SIX: CFR]
반클리프앤아펠 목걸이, 까르띠에 반지, 바쉐론콘스탄틴 시계, 몽블랑 만년필 …

이것들의 공통점은 결혼이나 취업 같은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에 구매하거나 선물하는 대표 상품들이란 것입니다. 또한 모두 스위스의 럭셔리 기업 리치몬트 그룹 소속의 브랜드라는 사실입니다.


리치몬트 그룹은 루이비통, 디올, 셀린느 등 75개 브랜드를 보유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구찌, 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을 가진 케링과 더불어 세계 3대 명품 기업으로 꼽힙니다.

리치몬트는 2026회계연도 1분기(2025년 4월~6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 늘어 54억1000만유로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주력인 주얼리 부문의 매출은 39억유로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LVMH가 4%, 케링이 16% 감소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전문가들은 리치몬트가 다른 명품 업체들과 차별화된 실적을 보인 비결로 이벤트용이 주력인 제품군과 비교적 낮은 중국 시장 의존도를 꼽습니다.

리치몬트는 주얼리 부문은 반클리프앤아펠, 까르띠에, 부첼라티, 베르니에 4개의 브랜드만 있지만 매출 비중은 72%나 차지합니다.


시계는 피아제, IWC, 랑에운트죄네, 바쉐론콘스탄틴, 예거르쿨트르, 보메메르시에, 파네라이, 로저드뷔 등 다양한 브랜드가 있지만 매출 비중이 15%에 불과합니다. 알라리아, 클로에, 던힐, 몽블랑 등 패션, 소품 브랜드가 나머지 13%입니다.

리치몬트 매출을 지역별로 보면 중국 침체 여파로 아시아 지역은 전년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유럽, 중동 지역에서 각각 11%, 17%, 17% 늘었습니다.


리치몬트는 스위스 취리히 증권거래소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증시에 상장되어 있습니다. 리치몬트의 본사는 스위스 제네바 인근 도시인 벨뷰에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증시에도 상장된 이유는 창업자가 남아공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리치몬트의 창업자 요한 루퍼트는 케이프타운 인근의 스텔렌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남아공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로 미국의 나파밸리와 같은 곳입니다. 그는 스텔렌보스대에서 경제학과 회사법을 공부했지만, 사업을 위해 중퇴했습니다.


요한의 아버지 안톤 루퍼트는 1940년대부터 담배 사업을 시작해 1960년대에 글로벌 담배 기업이 된 렘브란트 그룹의 창업자였습니다. 루퍼트 부자는 1980년대까지 담배 사업을 중심으로 광산과 럭셔리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리치몬트는 1988년 요한 루퍼트가 렘브란트 그룹에서 럭셔리 부문을 따로 분리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이미 까르띠에, 피아제, 보메메르시에 등을 품고 있던 리치몬트는 1990년대부터 본격 인수합병에 나서며 나머지 브랜드들을 차례차례 사들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 공격적인 확장으로 명품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요한 루퍼트는 남아공 출신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에 이어 2번째 부자입니다. 그의 자산은 2025년 기준 약 152억 달러에서 177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달초 리치몬트에는 악재가 닥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산 제품에 39%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최대 시계 수출국 스위스가 미국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리치몬트의 주가는 급락하고 실적 전망도 암울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스위스 대표 시계업체 스와치그룹의 닉 하이에크 최고경영자(CEO)는 “휴대성이 높은 명품 시계는 판매 채널이 유연하고 고객 이동성이 높다”며 “해외 유명 관광지에 있는 미국 쇼핑객을 공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사치품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자 중국 소비자들이 마카오와 홍콩에서 쇼핑하게 된 것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리치몬트 주가는 지난 29일(현지시간) 139.75스위스프랑에 마감했습니다. 지난 1년간 4.41% 상승했습니다. 지난 3월 초 187스위스프랑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관세 충격 여파로 지난 12일 130스위스프랑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시티는 지난달 리치몬트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수’로 제시하며 목표주가를 163스위스프랑으로 제시했습니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