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20일 10:1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한국 석유화학 업체들은 저조한 수익성의 늪에 빠졌다. 국내 최대 화학사인 LG화학, 롯데케미칼은 지난 1분기(1~3월)에 이어 최근 2분기(4~6월)에도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국내 최대 석유화학 단지인 여수 산업단지의 여천NCC는 제3공장의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운영 효율화, 구조조정 등 여러 자구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장기 불황과 지속된 적자에서 벗어나기는 요원한 상황이다. 기업들의 자구책 추진과 현실의 벽최근 들어 석유화학 업체들은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 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충남 대산단지에서는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의 대산공장이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 통합을, 전남 여수단지에서는 LG화학이 NCC 설비 매각을, 울산단지에서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의 설비 통폐합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각 회사별 이해관계 및 외부 환경 요인 등으로 실행에 속도가 붙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의 실행을 지연시키는 요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상법 및 공정거래법 등 각 법률의 절차적 규제에 대한 부담이다. 상법 및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합병, 분할 및 영업양수도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주주총회 승인절차, 주식매수청구, 채권자보호절차 등을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개월이 소요되고, 대규모 자금 부담이 수반된다.
또한,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간 결합 시, 기업결합 심사를 필요로 하며, 합병 또는 영업양수도 등 형태를 막론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을 승인할 때까지 최대 120일(4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지주회사의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에 해당하여 의무지분율(50% 이상) 등 까다로운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두 번 이상 기업결합 과정을 거친다면 공정거래법상 절차에 따라 과도한 시간이 소요되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두 번째는 구조조정 진행에 따른 국세 및 지방세 등 조세 부담이다.
법인세 등 국세와 취득세 등 지방세에 따르면 분할, 합병 등 구조조정에 대해 과세특례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세금 면제, 감면 등 세 부담을 경감해준다. 하지만 이를 위한 과세특례 요건이 엄격하고, 이를 충족하더라도 취득세 등 일부 세금은 전액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감면되는 것으로 여전히 높은 세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실적 악화와 이로 인한 부채비율 증가 등으로 기업이 직면한 재무적인 어려움이다. 현재 석유화학사들은 수년째 이어진 부진한 실적으로 부채비율 등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황이다. LG화학, 한화토탈에너지스의 신용등급 전망은 최근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 부담 때문에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각종 유예와 연기로 실효성 떨어지는 기업활력법정부는 이러한 외부 요인을 극복하고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사업재편을 실행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2016년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인 기업활력법(원샷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철강·석유화학 등 공급과잉 업종의 기업이 선제적으로 사업재편(구조변경 및 사업혁신)을 추진할 경우 각종 규제 특례를 한 번에 부여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크게 상법상 절차 축소, 공정거래법상 규제 완화, 세제 및 금융 지원 등 세 가지 축으로 구분된다.
상법상 절차 간소화로 각종 기한이 단축됐으며, 주식매수청구권의 경우 기업은 매수 대금을 1~2개월 이내가 아니라 최대 6개월까지 나눠서 지급할 수 있다. 또한, 현행 상법에 없던 소규모분할 요건을 도입해, 소규모 합병이나 주식교환의 요건이 완화됐다.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서는 승인 기업에 한해 지주회사로 전환되는 경우, 3년간 부채비율 (200% 초과) 초과 및 자회사 의무지분율(상장 30%, 비상장 50%) 미달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주식 100%를 보유해야 하는 규정도 승인받는다면 예외적으로 3년간 50% 공동출자를 허용하는 등 기업이 지주회사 체계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준다.
세금 및 금융에 대한 특례로는 기업활력법 승인 계획에 따라 사업을 양도하면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 등을 즉시 납부하지 않고 추후로 연기해주며, 사업재편으로 취득한 주식의 양도소득 과세에도 이연 혜택을 준다. 이 밖에도 사업재편에 수반되는 각종 인지세·등록면허세 감면, 지방투자촉진보조금 등 정책자금 지원, 고용 유지 지원, 그리고 정부 연구개발(R&D) 사업 가점 부여 등의 특례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지원 대상과 혜택 범위에 대한 제한이 생각보다 엄격해 실질적으로 대기업이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업활력법 특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일시적 유예나 절차 축소에 머물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기간 단축이나 대금 분할 지급은 시간을 좀 벌어줄 뿐 추후 현금이 빠져나가는 현실을 바꾸진 않는다. 공정거래 규제도 3년 후 원래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그 사이 구조개편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하는 압박이 따른다. 세금 이연 역시 세금 감면과는 다르다. 부담을 덜어줬다기보다, 언젠가 납부해야 할 세금을 잠시 미뤄놓은 것이다. 자발적 구조조정 이끌 발상의 전환 필요석유화학사들은 장기 불황과 수익성 악화 속에서 생존을 위한 자발적인 구조조정의 첫 발걸음을 떼고 있다. 이제 구조조정 속도는 석유화학 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민간주도의 구조조정 움직임에 발 맞춰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강화 뿐만 아니라 각 기업들의 생존 가능성과 자구 노력, 고부가/친환경 사업전환 전략 등을 고려해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석유화학 기업 간 구조조정을 위한 기업결합이 실행된다면 현재의 지방세법에 따라 세제 감면을 받더라도 관할 지방자치단체에는 수십억 원 이상의 취득세 세입이 발생한다. 이러한 재원을 구조조정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프라 설비나 시설장치 투자에 보조금으로 직접 지원하는 등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