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짧게 장마가 지나가고 또 며칠 폭포수처럼 비가 쏟아진 뒤엔 비 소식조차 뜸해서 풀꽃문학관 뜨락의 나무나 꽃들에게 물을 주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먼 곳에 강연 일정이 있더라도 일단은 문학관 정원에 물 주는 일을 해결해야만 한다.
남 보기엔 단순한 일 같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수도에 연결된 호스 줄을 잡고 곧추서서 정원의 풀과 나무들에게 물을 골고루 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노라면 가끔은 모기란 녀석이 와서 물고 가기도 해 그 또한 성가시고 짜증 나는 일이다.
풀과 나무는 삶의 위대한 스승
하지만 그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명색이 풀꽃문학관이라면서 물을 주지 않아 풀꽃이나 나무가 말라 죽었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 하겠는가. 정말로 요즘엔 식물이 타서 죽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날씨다. 물 부족도 물 부족이지만 햇빛이 문제다. 그야말로 불볕이다.
특히 잎사귀 넓은 식물들한테 치명적이다. 함박꽃, 원추리, 비비추, 자란(紫蘭), 그런 애들이 그렇고 모란도 따가운 햇빛 아래에선 약골이다. 옥잠화는 차마 눈 뜨고서는 볼 수 없을 만큼 처절한 모습이다. 그 넓고도 호사스럽기조차 한 이파리가 일그러져 있는 걸 볼 때는 가슴이 쩌릿하니 아파온다.
2014년 처음 풀꽃문학관을 열고 나서 10년 동안 나는 이 풀꽃문학관의 풀과 나무들을 가꾸기 위해 노동자로 살았다. 일평생 가장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새롭게 알고 느낀 것이 많다. 남들이 볼 때는 범상한 풀밭이나 초라한 정원 같겠지만 풀꽃문학관 뜨락은 나의 새로운 학교였으며, 그 뜨락에서 만나는 풀과 나무는 올망졸망 나의 학습 동료였고, 때로는 삶을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이었다.
우리 풀꽃문학관 정원에는 사람이 심지 않았는데도 저들 스스로 와서 사는 나무나 풀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불편하고 고집스럽다. 먼저, 차방(茶房) 앞 유리창에 바짝 붙어서 자라는 노간주나무가 있다. 이 녀석은 벌써 지붕 높이까지 키가 자랐는데 저 스스로 와서 자라는 나무다. 뽑아서 옮겨야 하는데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두고 보는 중이다.
식물도 제가 살고 싶은 땅 골라
그다음은 문학관 옆문 앞에 와서 살고 있는 접시꽃. 이 녀석 또한 서 있는 자리가 처마 끝 시멘트 틈서리라서 그 살아가는 모습이나 제 몰골이 여간 불편하고 옹색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해마다 지붕 높이까지 자라 다닥다닥 붉은 꽃을 피워 하늘에 매다는 성의가 아주 정성스럽다. 요즘은 이파리가 다 시들고 병들어 죽었는데도 줄기 끝 마지막 꽃을 피워내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고는 보리장나무(일명 보리똥나무)와 산초나무. 그 두 나무는 뒤 뜨락 돌담 위아래에 마주 서 있는데 역시 내가 일부러 심지 않은 녀석들이다. 어디선가 씨앗이 와서 자라는 나무들이다. 처음엔 조그맣게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제법 우람하게 자란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사람 눈에 마땅찮아도 그들이 처음 와서 뿌리 내린 자리를 존중해 그 자리에 두고 보는 중이다.
흔히 식물은 한자리에 붙박여 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그렇지 않다. 식물도 제가 살고 싶은 땅을 찾아다니며 산다. 특히 일년초나 숙근초(宿根草)가 그러하다. 봉숭아나 채송화, 코스모스꽃은 말할 것도 없고 구절초, 용담, 산국, 할미꽃, 금낭화, 복수초, 깽깽이풀, 층층꽃, 솔대극, 그런 녀석들은 절대로 사람이 심어준 자리에 얌전히 살지 않고 제가 살고 싶은 자리를 찾아다니며 선택해서 산다. 분명 여기에 심은 나무인데 다음 해엔 저기에 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꽃과 나무에게서 배우는 것은 생명의 자유의지이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땅에서 살겠다.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러니 너무 많이 간섭하지 마라. 실상 이것은 매우 강력한 생명 현상이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발로이다.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그걸 알아야 했고 나무나 풀들의 뜻을 받아 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걸 이제 알았으니 너무 늦게 안 것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실상 풀꽃문학관은 그동안 ‘말로만 문학관’이었다. 문학관협회에도 가입하지 못한 자격 미달의 문학관이었다. 다만 10년 전, 적산가옥 한 채를 이용하여 문학관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300평 규모의 건물을 새로 지어 지난 7월 29일 새로운 문학관을 개관했다. 그러므로 ‘말로만 문학관’에서 실제적인 문학관이 되었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문학관 정원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 걱정이다. 이 넓은 정원의 풀과 나무들을 어떻게 죽지 않도록 돌볼 것인가. 하는 수 없이 새로 생긴 신관 건물의 정원을 구역을 정해 직원 세 사람이 나누어 관리하도록 하고 본래 있던 구관의 정원을 내가 맡아서 관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풀과 나무들을 싱싱하게 자라도록 돌보는 것이 풀꽃문학관다운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마음의 건전지' 한껏 충전하길
새로 문을 연 풀꽃문학관을 위해 내가 드리는 부탁과 축복의 말씀이 있다. 아래의 시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커다란, 커다란 쓰레기통이 되기를 바란다/ 쓰레기통이라도 마음의 쓰레기통/ 마음의 쓰레기가 가득한 사람들 와서 버리고 버려도/ 넘치지 않는 하늘 같은 쓰레기통/ 그리고는, 커다란 커다란 세탁소나 빨래터가 되기를 부탁한다/ 마음이 후질러진 사람들 산더미 같은 빨랫감 안고 와서/ 빨고 빨아도 물이 모자라지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는 세탁소나 빨래터/ 나아가, 힘 좋은 충전소 전기 충전소 되기를 요구한다/ 세상살이 고달파 마음의 건전지 바닥난 사람들/ 떼 지어 몰려와 플러그를 한꺼번에 꽂아도/ 전기가 바닥나지 않는 강력한 전기 충전소/ 그래서, 사람들 모두 우리 문학관 다녀갈 때는 밝은 마음/ 거뜬하고도 상쾌한 몸이 되어 새처럼 훨훨 날아/ 다시 자기들 세상 속으로 힘차게 돌아가기를 소망한다.”(나태주, ‘풀꽃문학관에 바란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