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가 19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내수 부진과 미국 관세 부과로 기업 지원이 절실한 시점에 단체교섭과 파업에 따른 부담을 키우면 안된다"며 1년 유예해달라는 게 기업계 입장이다.
협력사 근로자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고 파업으로 이어지게 되면 '납기 준수'가 강점인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김 장관은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법이 아니다"라며 "1년 유예는 통과 후에 할 얘기"라고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9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과 관련해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과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기업계에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과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박평재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이재광 한국전기에너지산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노조법 개정안은 하청이나 특수고용 노동자도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협력기업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는 "중소제조기업 절반이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수급기업인 만큼 파업으로 인한 납기 지연과 거래 단절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중소기업 대표자들은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현장의 우려를 전달했다. 이재광 이사장은 “기업의 우려를 해소할 만큼 명시적인 것들이 없는 것 같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안을 고민해주고, 노동계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잦은 파업으로 중소기업까지 피해가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박평재 이사장은 "원청에서 파업이 생겨서 공장가동률이 낮아지면 협력사 매출과 근로자 소득까지 영향을 받는다"며 "노조법 개정이 당사자들 외에 2, 3차 협력업체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생각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으로 파업에 따른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적용 대상을 한정해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장규진 회장은 "조합원사 중에는 노조가 단체협약 교섭 과정에서 장기간 파업을 진행하면서 납기 지연이 발생하고 고객사 신뢰를 잃어서 몇 년째 매출 손실을 회복하지 못한 업체도 있다"며 "보호할 영역이 있으면 그 영역을 한정해서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법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동차·조선업계에선 산업 전반의 경쟁력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 최금식 이사장은 “우리 조선업이 강점을 보이는 고부가가치 선박까지 중국이 풍부한 인력과 근로시간 유연성을 무기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며 "현재도 조선사가 노조와 단체교섭으로 수개월 소모전을 겪고 있는데 노조법이 개정되고 협력사까지 교섭을 하게 된다면 우리 조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업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제도에 맞춰 연착륙할 수 있도록 1년 이상의 시행 유예기간 부여를 건의드린다”이라고 말했다.
이택성 이사장은 "수만 개 부품으로 구성된 자동차 업종의 특성상 일부 업체의 문제가 산업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점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노사가 합심해서 이룩한 국가 경제 핵심 산업으로서 위상과 고용안정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업 현장의 현실적인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대안 마련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우리 경제는 지금 내수부진과 미국의 관세인상 등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기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데 오히려 기업에 부담을 주는 사안들이 많이 논의되고 있다"며 "노조법 개정안은 자동차·조선 등 주력 산업에 광범위한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최소한 1년 이상 시간을 가지고 노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원하청의 교섭을 촉진하는 법안이라며 기업계 우려와 선을 그었다. 그는 "원하청의 교섭을 촉진해 갈등이 아닌 협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진짜 성장' 법안"이라며 "도요타가 원하청 상생모델로 세계 1등 자동차 기업이 됐듯이 구조를 수평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