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600년 사찰 위에 뜬 제임스 터렐의 하늘

입력 2025-08-20 08:44
수정 2025-08-20 08:45
하늘은 늘 우리 머리 위에 있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관찰하지는 않는다. ‘빛의 마법사’라 불리는 미국 출신 현대 예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 )은 이 익숙한 하늘과 빛을 작품 속으로 끌어와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열어준다. 그의 작업 앞에서 하늘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변화와 지각의 대상이 된다. 그는 캔버스 위에 빛을 재현하는 대신, 공간 속에서 빛의 변화를 포착하고 이를 통해 관람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이 빛의 향연을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 한국의 관람객들도 그의 작품을 찾아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원주의 ‘뮤지엄 산’에는 작가가 직접 설계한 ‘제임스 터렐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최근 용산 페이스 갤러리에서는 개인전 <James Turrell: The Return> (2025.06.14.~9.27)이 열리고 있다. 이는 2008년 이후 한국에서 오랜만에 마련된 제임스 터렐의 개인전으로, 서울 전시를 위해 처음 제작된 신작 <Wedgework>이 공개되면서 전시 마지막 날까지 모든 예약이 매진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늘을 품은 창, 세계 곳곳에 열리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처음으로 오롯이 체험했던 곳은 일본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으로 널리 알려진 이 미술관은 모네의 정원을 재현한 연못과 모네의 <수련> 연작, 대지 미술가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뿐만 아니라 제임스 터렐의 체험형 작품 세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프로젝터와 형광등, 네온 램프를 사용해 시각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며, 벽면이 움직이는 듯한 잔상을 만들어내는 <Afrum, Pale Blue> (1968), 어둠 속에서 푸른 빛 창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주는 <Open Field> (2000), 그리고 천장 중앙에 창을 내어 프레임 속 하늘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Open Sky> (2004)이 있다. 특히 <Open Sky>는 Skyspace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하늘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 조명이 더해져 자연광과 인공광이 어우러지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시작해 나오시마를 거쳐, 또 다른 Skyspace 시리즈는 베이징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사찰에 내려앉은 ‘GATHERED SKY’

베이징의 중심부, 자금성과 경산공원 인근에 자리한 600년 역사의 고찰 ‘지주사’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템플·동징웬’에서도 제임스 터렐의 하늘이 열렸다. 2013년 베이징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선셋 세션’이라는 이벤트로 공개된 <Gathered Sky>는 매일 예약이 매진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열기에 힘입어 2014년부터는 상설 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관람은 매일 일몰 시각에 맞추어 진행된다. 사전에 방문을 예약하면 해당 날짜에만 유효한 특별한 입장 시간, 즉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일몰 시각이 문자로 안내된다. “최소한 일몰 시작 20분 전까지 공간에 도착해야 한다.”라는 공지사항과 함께 관람객에게는 약 한 시간의 체험 시간이 주어진다. 베이징의 일반적인 미술관 입장료를 훨씬 웃도는 150위안(한화 약 3만 원) 이라는 가격에도 사람들은 제임스 터렐의 하늘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기꺼이 발걸음을 옮긴다.

빛 이외의 모든 요소를 걷어내고, 인공광과 자연광이 뒤섞이는 장면을 조용히 관찰하는 시간. 그 속에서 인간이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하늘은 제임스 터렐이 설계한 프레임을 통해 관객이 있는 자리로, 그 높이로 내려오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은 늘 저 멀리 있는 듯하지만 나는 그 하늘을 우리 곁으로 데려오고 싶다. 그러면 당신도 마치 그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빛과 침묵 속에서

공간에 입장하기 전, 안내판에는 “‘선수(?修:참선(?定)과 수행(修行)을 이르는 말, 불교에서 마음을 닦고 고요히 하는 수행 방식)’ 하는 이는 하늘처럼 탁 트인 본성을 서서히 드러낸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방안을 가득 채운 하늘, 나에게 주어진 작은 방석, 그리고 천천히 변화하는 일몰의 빛깔. 디지털 기기를 꺼두고 침묵을 유지한 채, 방석에 앉거나 누워 천장에 난 창을 통해 드러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템플·동징웬’이 본래 사찰이었던 만큼, 이곳에서의 체험은 단순한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것에서 더 나아가 불교에서 일컫는 ‘깨달음’에 가닿기를 권유한다.



이 시간 동안 관람자는 단순히 하늘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하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이는 선수(?修)에서 강조하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관찰하는 수행과 맞닿아 있다. 하늘과 빛, 그리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 속에서 관람자는 자신을 성찰하는 하나의 수행의 장(場)에 서게 된다. 이는 곧 예술적 공간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수행이자, 서구 예술과 동양적 수행이 만나는 교차점이라 할 수 있다.

제임스 터렐은 “나는 빛을 하나의 물질적인 재료로 다루는 것을 선호하지만, 사실 나의 진정한 매개체는 ‘지각’이다. 나는 당신이 자신의 감각을 느끼고,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터렐의 공간 안에서 하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살아 있는 경험이 되며, 우리는 일상에 묻혀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금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그 빛의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저마다의 하늘을 새롭게 마주한다.

배혜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