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정 연차휴가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한경 보도(8월 18일자 A1, 2면)다. 6개월만 일해도 15일의 연차를 주고, 2년 차 직원의 연차 일수를 20일 안팎으로 늘리는 게 골자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만 1년을 근무해야 15일의 연차가 발생하고 이후 2년이 지날 때마다 하루씩 연차가 쌓인다. 상한선은 25일이다. 정부가 연차휴가 제도를 손보기로 한 것은 근로자의 업무량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한국인의 연평균 근로 시간은 1872시간(2023년 기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42시간을 웃돈다. 연차 제도를 개편하고, 소진을 독려하면 근로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통계만 보면 기업이 근로자를 쥐어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다수 직장인은 추가 수입을 위해 스스로 연차를 포기하고 있다. 휴가 미사용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를 보면 ‘연차 수당을 받기 위해’라는 답이 제일 많다. 자발적인 연차 포기 사례는 더 많아질 전망이다.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돼 ‘숨은 보너스’로 불리는 연차 미사용 수당이 증가해서다. 제도를 개편하더라도 근로 시간은 줄이지 못하고, 기업의 부담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한국인의 업무량이 많다는 지적도 따져볼 부분이 적지 않다. 2001년만 해도 한국인의 연평균 근로 시간은 2458시간으로 OECD 평균을 600시간가량 웃돌았다. 하지만 2023년엔 이 격차가 130시간으로 급감했다. 자발적인 연차 포기 사례가 많음을 고려하면 과중한 수준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통계 착시도 감안해야 한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주당 20시간 내외로 일하는 단기 근로 정규직이 많아 연평균 근로 시간이 낮게 계산된다.
휴가와 돈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근로자 개인의 몫이다. 정부가 할 일은 다양한 근로 계약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유연화하는 것이다. ‘장시간 근로 국가’란 프레임에 사로잡혀 법정 연차를 늘리고, 획일적으로 주 52시간을 강요하는 건 근로자에게도,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