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면서 셀프 충전, 축구·농구까지…중국 뒤덮은 로봇[글로벌 현장]

입력 2025-08-24 09:35
수정 2025-08-24 09:37

올 8월 중국은 말 그대로 로봇의 계절이다. 중국 정부는 연일 로봇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 상반기 세계 최초 로봇 마라톤을 연데 이어 하반기 들어선 상하이 인공지능(AI) 대회, 세계로봇콘퍼런스, 세계 최초 로봇 전문 판매점, 로봇 올림픽 등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로봇 강국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로봇이 중장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산업이라고 여기고 있는 데다 미국과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쏟아지는 신제품…직접 체험에 ‘환호’
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이좡 경제기술개발구에서 올 8월 중순 열린 세계로봇콘퍼런스(WRC).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올해 WRC는 ‘중국의 로봇 차력 쇼’였다. 유니트리, 갤봇 등 중국 로봇 기업 선두주자뿐 아니라 각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혁신센터들이 자체 개발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을 경쟁적으로 공개했다.

중국전자학회와 세계로봇협력기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WRC는 올해로 10회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 내 행사 수준에 그쳤지만 올해는 달랐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을 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받으며 행사 기간 내내 인산인해를 이뤘다.

‘로봇을 더 스마트하게, 체화(임바디드) 주체를 더 지능적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로봇으로 상상 가능한 모든 상황을 재연했다. 행사장의 대부분의 부스엔 발 디딜 틈 없이 기업 관계자, 투자자, 일반 관람객들이 붐볐다. 여기저기 휴머노이드와 로봇 개가 분주히 걸어다녔고 때때로 공중에는 로봇 새도 날아다녔다.

투자 기회를 찾기 위해 중국 내외부에서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이 몰려 들었고 로봇에 관심이 많은 성인부터 학생들까지 관람객 연령층도 다양했다. 특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온 단체 관람객이 많았다. 행사장을 찾은 한 초등학생은 “다양한 로봇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면서 직접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며 “로봇 관련 공부를 계속해서 로봇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는 중국과 글로벌 로봇 기업 약 220곳이 참가해 1만5000여 종의 로봇을 선보였다. 구조용 로봇, 잔디깎이 로봇 등 WRC에서 처음 공개된 신제품만 100여 종에 달했다. 신제품 건수는 지난해의 두 배를 넘어섰다. 기본적인 수준의 서비스용 휴머노이드 로봇를 비롯해 용접·도장이 가능한 산업용로봇, 이륜 로봇 등도 전시장을 빛냈다.

무엇보다 가정생활에 쉽게 응용할 수 있는 살림 및 돌봄 로봇 제품이 많았다. 관람객들은 반려 로봇과 대화를 하거나 보행 보조 로봇을 직접 착용한 뒤 로봇 제품을 적극 체험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 판매점에서 손쉽게 구매까지
베이징·상하이·저장·쓰촨 등 중국 각 지역의 핵심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특히 주목받았다. 중국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 행동 계획’을 수립해 국가·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구축한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를 운영 중이다. 주요 로봇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구조다. 올 상반기 세계 최초 로봇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톈궁’을 제작한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가 대표적이다.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는 기존 ‘가장 잘 달리는 로봇’에서 한 단계 발전한 ‘가장 잘 활용 가능한 로봇’을 소개했다. 배터리 급속 교환 시스템을 추가해 지속가능한 작업 능력을 확보했으며 팔의 작업 정밀도와 하체의 유연도도 높였다.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 관계자는 “기존 로봇의 운동 제한 능력을 넘어섰으며 복잡한 작업 환경에 유리하게 개발해 제조·물류 분류 등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는 다양한 물체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인간과 유사한 보행 이동 능력이 있는 ‘칭룽’을 선보였다. 저장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는 인간과 비슷한 유연성을 갖춰 오프라인 소매 현장에서 고객 맞춤형 응대가 가능한 ‘나비에이아이’를 내놨다.

최근 세계 최초 자율 전력교환 시스템을 공개한 유비테크는 산업용로봇 ‘워커S2’를 소개했다. 수동 개입이나 종료 없이 스스로 3분 만에 완전 자동으로 배터리 교체가 가능해 24시간, 주 7일 내내 연속 작동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행사장 인근에는 로봇 전문 판매점도 문을 열었다. 로봇 판매, 부품, 서비스, 정보 피드백까지 아우르는 세계 첫 매장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위에 실리콘 피부를 덮고 옷을 입혀 인간과 동일한 외형을 한 가사 도우미 로봇부터 아이들과 놀이를 위해 제작된 미니 로봇, 대화 등 상호작용에 중점을 둔 돌봄 로봇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가사 도우미 로봇은 요리를 비롯해 빨래를 돌리고 세탁물을 갤 수도 있다. 통상 10~20초면 셔츠 한 장을 정확하게 갰다.

의료용 로봇도 관심을 끌었다. 치과 수술용 로봇은 의사가 임플란트 수술을 30분 내에 마칠 수 있게 돕도록 설계됐다. 이미 의료 현장에 도입됐으며 총 1만 번의 수술로 2만여 개의 치아를 심었다. 실시간 컴퓨터단층촬영(CT)과 원격 수술이 가능한 정형외과 수술 로봇도 판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식업계도 로봇이 ‘장악’
로봇 전문 판매장 근처엔 세계 최초 로봇 식당이 문을 열었다. 식사류 조리를 제외한 음료 제조, 홀 관리, 서빙 등을 모두 로봇이 담당하는 게 특징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웨이터 로봇이 고객들을 맞이했다. 5개 로봇으로 구성된 록밴드가 기타, 드럼, 건반을 연주했으며 바 테이블에선 정장을 입은 바텐더 로봇이 고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일상적인 대화 이외에 음식 메뉴도 추천해줬다.

식당 안에는 공룡·강아지 등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돌아다니면서 고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메뉴는 일반 식당처럼 테이블마다 부착된 큐알(QR) 코드를 통해 주문할 수 있다. 로봇 식당의 점장을 맡고 있는 쑨링 베이징 이좡 로봇기술산업개발유한공사 부총경리는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로봇 산업이 요식업계에 직접 응용된 시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더 많은 로봇 기업들에 다양한 시나리오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로봇이 단순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장난감에서 실용적인 제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국의 행보를 미국과 첨단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가파르게 성장하는 로봇 분야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원천 기술뿐 아니라 상용화에서도 선제적으로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계산이다. 이 때문에 생성형 AI 딥시크와 마찬가지로 성능은 좋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니트리의 R1이 대표적이다. 손을 바닥에 짚고 제자리에서 회전하고 물구나무를 선 채 이동 가능한 R1 가격은 3만9900위안(약 770만원) 정도다. 이전 모델인 G1(9만9000위안), H1(65만 위안)의 최대 3분의 1 수준이다. WRC 참관을 위해 베이징을 찾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지능로보틱스연구센터 관계자는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제조업 고도화 전략을 펴면서 로봇 산업의 발전 속도가 빨라졌다”며 “단순한 규모만으로 최대 시장이 아니라 비용과 기술적으로도 로봇 혁신의 중심지가 됐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한국경제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