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재 건설사 공공입찰 제한 5년간 '0건'…당정, 법 개정 착수

입력 2025-08-18 16:28
수정 2025-08-18 17:04

산업 재해가 발생한 건설사를 상대로 공공입찰 참가 제한이 실행된 사례가 최근 5년간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들어 4명의 현장 노동자 사망으로 포스코이앤씨가 이재명 대통령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은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공공입찰 규제 강화를 위한 법 개정 절차에 착수했다.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조달청에서 제출받은 공공입찰 참여 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이달까지 산업 재해를 규율하는 국가계약법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공공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받은 건설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건설사들의 공공입찰 제한 244건 중 231건(94.7%)은 계약불이행이 이유였다. 정해진 기한 내 완공을 못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등을 사유로 대부분이 1개월 참가 제재를 받았다. 나머지는 관련 기관 제재 요청(7건), 하도급 위반(4건), 뇌물 제공(1건), 국가에 손해를 끼침(1건) 등이다.

국가계약법상 산안법 위반이 제재 사유에 오르지 못한 배경엔 미약한 규제 기준이 있다는 것이 정부와 민주당의 판단이다. 관련 현행법에선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한 중대한 위해(산업재해)에서 동시에 사망한 근로자 수가 2~6명일 때 입찰 계약 1년 제재, 6~10명일 때 1년 6개월 제재, 10명 이상일 때 2년 제재를 규정하고 있다. 모두 단일 사고에서 동시에 발생한 사망자의 수만 기준으로 삼는다.

이에 정부는 최근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입찰 제한 기준을 확대하는 논의에 착수했다. 최소 기준을 2명 사망을 1명으로 낮추거나, '연간 다수 사망' 등으로 발생 횟수를 따지는 조치들이 거론된다.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반복적인 산업재해를 원천적으로 막으려면 정말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만큼 대책이 신속하게 마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당도 발맞춰 법 개정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기재위 소속 여당 의원들 중심으로는 국가계약법상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간을 늘리는 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참가 제한 범위를 국가계약법이 정의하는 중앙정부 사업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사업까지 늘리도록 하는 지방계약법 개정 등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박 의원은 "이윤만 좇아 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한 건설사에 아무 조치도 없었던 것은 심각한 문제고 관계기관 대응도 안일했다"며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개정으로 규정을 실효성 있게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건설사들이 근로자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공공사업 입찰 심사 절차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가 산안법을 관심 사안으로 둔 만큼 법 개정에는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대표이사에게 사업장 안전을 확인할 책임을 지우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고위원인 황명선 의원도 사업주에 최대 세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다만 규제 강화의 실효성이 담보되기 위해선 면책과 관련한 추가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사전에 사업주가 충분한 조치를 취했는지 따져 면책해 주는 조항이 포함됐다"며 "마찬가지로 예방책을 충분히 이행한 건설사의 책임을 덜어준다면 규제 효과가 오히려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장 규모별로 규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