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은 미국의 ‘러스트벨트(Rust Belt)’와 비슷한 산업 쇠퇴 현상을 겪고 있다. 포항, 울산, 창원, 거제, 광양, 여수, 목포 등 한때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주도한 산업 도시들이 인구 감소와 산업 위축으로 어려움에 놓여 있다. 특히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중공업의 장기 침체로 지난 10년간 청년층이 대규모로 유출돼 지역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러스트벨트는 미국 제조업 발전을 이끈 오대호 인근 중서부 도시들을 지칭하는 말로, 미국 대선에서 주요한 캐스팅보트 지역으로 떠올라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자동차산업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 인구 규모 기준 미국의 5대 도시였으나 현재는 26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모든 제조업 특화 도시가 쇠퇴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6개국 1993개 도시를 분석한 국제 연구에 따르면 제조업 특화 도시의 약 3분의 1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높은 대졸자 비율을 바탕으로 지식집약형 고숙련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피츠버그다. 피츠버그는 철강산업 쇠퇴 이후 카네기멜런대를 중심으로 바이오, 로봇, 정보통신 등 첨단 산업을 적극 육성했고, 이 과정에서 대학과 기업, 지방정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추진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지방 거점 대학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남해안 러스트벨트를 포함한 지방의 부활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다. 다만, 과거 혁신도시 건설 사례에서 보듯 한정된 재원을 10개 지방대학에 분산 투자해 서울대같이 대부분 분야에서 연구와 인재 양성 역량을 갖춘 대학이 지방에 다수 생겨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수도권을 제외한 4대 광역권에서 연구 중심 대학과 인재 양성 중심 대학으로 역할을 명확히 나누고, 지역의 기존 산업 및 미래 특화 산업과 관련성이 높은 학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피츠버그 부활을 이끈 카네기멜런대와 같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점은 부활한 제조업 특화 도시에서도 기존 제조업 자체는 계속 쇠퇴했다는 사실이다. 부활의 비결은 첨단 지식집약 산업의 급속한 성장이 제조업 쇠퇴를 상쇄한 데 있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지역 산업 위기 대응을 위해 많은 정책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위기 유형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남해안 지역처럼 장기적인 산업구조 쇠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은 기존 산업에 대한 단순한 지원보다 신산업으로의 전환을 뒷받침하는 혁신 역량 축적 및 산업 간 연계성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이 절실하다. 지방 대학과 지역 산업의 객관적 지표를 구축해 현재의 위기가 단기 경기 침체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진단하고, 잠재성이 높은 대학·학과와 산업을 선별할 실증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자체 간 협력을 통해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대승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되는 일본 간사이 광역연합 사례를 참고하고, 최근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의 협력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초광역권에 대한 재정분권을 확대하는 등 최근 출범한 충청광역연합에서 성공적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한다면 남해안 지역을 비롯한 한국판 러스트벨트의 지속 가능한 부활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