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을 강조하며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확인했다. 정부 출범 이후 취한 대북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중단 등 일련의 조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에서 효력이 정지된 9·19 군사합의 복원도 약속했다. 다만 북한이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어 이 대통령의 유화 메시지가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계 회복 의지 내비친 李이 대통령은 “국민주권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며 “우리 정부는 실질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가능한 사안은 곧바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며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체결된 9·19 남북 군사합의는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1월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남북 접경지역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고, 북한은 이에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도 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를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대북 3대 원칙’도 공개했다. 북측 체제를 존중하고,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으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길 인내하면서 기대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10·4 선언’ 때 처음 등장한 남북 간 경제협력의 근간인 ‘공리공영과 유무상통 원칙’을 언급하며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교류 협력 기반 회복과 공동 성장 여건 마련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여권 관계자는 “급작스러운 대화 재개보다는 민간 협력을 통한 자연스러운 접촉을 유도하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北 화답 여부는 미지수이 대통령은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며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한다”고 했다. 이어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혀 나가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비핵화’를 언급하면서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지 않고, 비핵화 달성 시점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과거 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해 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핵 보유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수렴되고 있다”며 “그렇다고 이재명 정부가 ‘비핵화 원칙’ 자체를 버릴 순 없기 때문에 우회적인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비핵화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 현 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거론은 하되 ‘핵 없는 한반도’ ‘비핵화’처럼 에둘러 표현했다는 분석이다.
비핵화 구상의 구체성이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비핵화 문제가 당장 해결은 어렵다는 판단하에 최종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유연성을 발휘해보겠다는 의도 같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 대통령이 북한의 ‘핵심 불만’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3대 원칙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며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건 한국과의 체제 전쟁에서 승산이 없고, 한국 문화가 북한에 유입되는 걸 도저히 막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