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내놓은 메시지는 북한, 일본, 국내 정치 등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를 바탕으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북한 문제에서는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9·19 군사합의’도 선제적, 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고 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전반적으로는 화해와 미래에 방점을 찍은 메시지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한·일 사이에) 입장을 달리하는 갈등도 크게 존재한다”며 지난 정부의 광복절 경축사에선 사라진 과거사 문제를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라며 관계 개선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전몰자 추도식에서 13년 만에 ‘반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차기 총리 유력 후보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은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일 사이엔 언제든 갈등 요소가 돌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국 간 신뢰를 꾸준히 쌓아가야 할 이유다.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한·일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북한이 전혀 호응하고 있지 않지만, 대북 화해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한 것은 예상된 일이다. 하지만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하는 건 다른 문제다. 파기 선언 이전부터 걸핏하면 합의 사항을 위반한 북한이다. 자칫하면 우리 군의 손발만 묶이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 있는 만큼 상호 동등한 조치를 전제로 한 신중한 대처가 필수다.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며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긍정적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목표여야 한다.
80년 전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냉혹한 국제 정세의 격랑에 내던져져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와 경제 현실도 그때 못지않은 파도에 휩싸여 있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통합 의지로 사나운 파도를 헤쳐 나갈 선장의 역할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