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에어컨’이 정치 문제로 떠오른 이유

입력 2025-08-13 17:58
수정 2025-08-14 10:04

프랑스에서 폭염이 지속되면서 에어컨 설치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에서 에어컨을 둘러싼 문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달 유럽 전역에 닥친 폭염이 에어컨 문제를 정치적 시금석으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가 에어컨 의무 도입을 반대하는 가운데, 극우 국민연합당 대표 마리 르펜은 "전 세계 수십 개국과 달리 냉방 부족으로 공공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정부는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정당이 집권하면 대규모 냉방 설비 계획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녹색당 대표 마린 통들리에와 파리 부시장 댄 레르는 르펜의 제안을 비판하며, 도시 녹화와 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 등 지구 온난화 대응책을 강조했다. 레르는 “에어컨은 일종의 부적응”이라고 평가했다.

보수 성향 신문 르 피가로는 “더위는 시민들의 학습을 저해하고, 근무 시간을 단축시키며, 병원을 마비시킨다”는 이유로 에어컨을 옹호했다. 반면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에어컨이 뜨거운 공기를 거리로 내뿜고,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지적했다.

NYT는 “유럽의 여름이 더워지는 만큼 프랑스의 에어컨 논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유럽은 무더위가 짧아 에어컨 필요성이 적었고, 사치품처럼 여겨져 보급률도 낮았다. 그러나 최근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찬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 코페르니쿠스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대부분 지역이 40년 전보다 폭염이 더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가구의 절반만 에어컨을 갖추고 있으며, 스페인은 약 40%, 프랑스는 20~25%에 불과하다. 2023년 기준 EU 가구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62.5%는 난방에 사용된 반면, 냉방에 사용된 에너지는 1% 미만이었다.

프랑스 컨설팅 회사 이타크 창립자 보두앵 드 라 바렌드는 “논쟁이 에어컨 설치 찬반으로만 압축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대부분 사람은 중간 입장에 있고, 에어컨은 유용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요양원·병원·학교 등 공공기관 냉방 필요성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난달에는 폭염으로 1,800개 이상의 학교가 임시 휴교한 바 있다.

환경부 장관 아녜스 파니에-루나셰는 “에어컨은 흑백논리가 아니다”라며 “취약계층에게는 필요하지만, 모든 곳에서 가동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에어컨으로 집을 시원하게 유지하는 옵션을 안내하면서도, “다른 모든 방법을 검토한 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