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를 연 미국 기업 ‘테슬라’. 2003년 공동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은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따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를 설립했다. 테슬라는 교류 전력 시스템과 AC 유도 전동기(인덕션 모터)를 개발해 전기 산업에 혁신을 가져온 과학자다. 이는 내연기관에 도전하는 전기차 기업의 비전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위대한 과학자 테슬라에 대한 헌사이기도 했다.
에디슨과 테슬라가 벌인 전류전쟁은 ‘커런트 워’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전기 혁명이 일어난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 다시 시작된 직류와 교류의 전쟁 양상도 살펴봤다. 에디슨 vs 테슬라, 전기 패권 경쟁의 서막1880년대 말 미국 전기 산업의 패권을 두고 두 천재의 전쟁이 벌어졌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천재 니콜라 테슬라가 그 주인공. 에디슨은 직류(DC), 테슬라는 교류(AC)의 선봉장이었다.
에디슨은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흐르는 전류인 직류를 기반으로 발전기·배선망·전등·전력회사를 통합한 전력 제국을 세웠다. 1882년 뉴욕 맨해튼에 세운 세계 최초의 중앙발전소는 110V 직류를 표준으로 삼았고 초창기 미국 전력 공급의 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직류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송전 거리였다. 반경 약 400m 이내의 가정에만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직류 전압은 쉽게 변환할 수 없었고 고전압 송전이 어렵다 보니 장거리 송전 시 전력 손실이 컸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발명가 테슬라다. 그는 교류 유도전동기를 고안했다. 발전소에서 높은 전압으로 전기를 송전하고 변압기를 통해 원하는 전압으로 낮추는 방식이었다. 장거리 송전의 난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테슬라는 원래 에디슨이 설립한 제너럴일레트릭(GE)의 직원이었다. 에디슨의 권유로 전기를 안전하게 송전하는 방법을 찾아 제안했다. 하지만 에디슨은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류 신봉자인 에디슨은 직류 발전기를 개선하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테슬라는 에디슨이 내 준 숙제도 풀었다. 하지만 에디슨은 테슬라의 뒤통수를 쳤다. “자네는 미국식 농담을 모르는군”이라며 월급만 소액 올려주겠다고 했다. 모욕을 견디지 못한 테슬라는 회사를 떠났고 훗날 ‘전류전쟁’이 불붙는 계기가 됐다. 전류전쟁 1막 —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승리테슬라의 잠재력을 알아본 사람은 발명가이자 사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였다. 현재 원전 관련 다양한 특허를 갖고 있는 그 웨스팅하우스의 설립자다. 그는 변압기 기술을 결합한 교류 송전 시스템을 개발한 테슬라의 특허를 사들였다. 장거리 송전에 최적화된 이 시스템은 에디슨의 직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에디슨은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공포 마케팅을 펼쳤다. 교류 전류로 동물을 감전사시키고 전기의자를 사형 집행에 사용하게 했다. 교류 공포에 판세는 에디슨으로 기우는 듯했다.
전세를 뒤집은 사건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였다. 전력 공급 입찰에서 웨스팅하우스는 GE보다 절반 가격으로 제안해 계약을 체결했다. 웨스팅하우스가 같은 전력을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류에 비해 교류가 훨씬 적은 양의 구리 전선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이어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는 나이아가라폭포에 수력발전소를 세우고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까지 따냈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수력발전소였던 이곳은 당시 미국 모든 중앙발전소를 합친 것과 맞먹는 10만 마력의 전력을 생산했고 40km가 떨어진 곳까지 고전압 교류 전력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교류는 전력 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테슬라는 전류전쟁의 승리자로 기록됐다.
하지만 사업가라기보다 발명가이자 이상주의자였던 테슬라는 잇따라 대형 프로젝트 도전에 실패하며 한 호텔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어갔다. 그의 이름도 에디슨에 가려 오랜 기간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대중화된 전기, 전자공학 시대의 서막전류전쟁이 끝나고 송전망이 안정되자, 전기는 급속히 확산했다. 1920년 미국 가구의 전기 보급률은 35%에 불과했으나 1929년에는 약 68%로 상승했다. 1935년에는 가구의 33%가 냉장고를 보유했고, 전기 다리미·세탁기·진공청소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도 빠르게 보급됐다.
산업 분야에서는 1899~1925년 사이 근로자 1인당 전력 사용량이 30배 늘었으며, 전력은 1930년까지 산업용 기계 동력의 80%를 공급했다. 이러한 전력 혁신은 포드의 조립라인, 홀–에루 공정 (알루미늄 제련법) 같은 대량생산 공정을 가능하게 하며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1947년, 인류는 전자문명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미국 벨 연구소가 트랜지스터를 발명하면서다. 당시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이던 진공관은 부피가 크고 발열·전력 소모가 심했다. 내구성도 약해 전자기기의 소형화와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었다.
벨연구소는 최초로 통화 서비스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동식 전화 교환기의 잦은 고장과 통화 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전자 증폭기를 연구했다. 그 결과 탄생한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을 완전히 대체했고,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등 각종 전자기기의 소형화를 이끌었다. 전자공학 시대의 서막을 연 발명자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전류전쟁 2막 — 에디슨의 역전극?하지만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디슨의 직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직류는 교류보다 전력 손실이 적어 경제적이다. 기술 발전으로 장거리 송전도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기술이 HVDC(초고압 직류 송전)다. ±800kV급 직류로 수천 km를 효율적으로 송전할 수 있다. HVDC는 태양광과 풍력 등으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도심까지 효율적으로 전송하는 기술로 꼽힌다. 중국은 서부 사막과 수력지대에서 발전한 전력을 동부 대도시로 보내기 위해 HVDC를 도입했고, 유럽은 국가 간 전력 교환에 HVDC 해저케이블을 활용한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HVDC 시장은 2024년 96억 달러에 달한다. 향후 연평균 24.3% 성장률을 보이며 2034년 599억 달러까지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류 부활의 또 다른 무대는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로 들어오는 전력은 기본적으로 전력회사에서 공급하는 교류(AC)다. 이 AC 전력이 UPS와 변압기를 거쳐 랙(서버 장비)까지 AC 형태로 공급되고 각 랙 내부의 전원공급장치에서 직류(DC)로 변환돼 서버에 공급된다. 2016년 구글은 이 변환 이후의 배전 전압을 12V DC에서 48V DC로 높이는 방식을 공개해 전력 손실을 줄이고 랙 전력 효율을 개선했다.
구글이 2025 OCP(Open Compute Project·오픈 컴퓨트 프로젝트)에서 발표한 ±400V DC 방식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데이터센터의 입구 단계에서 AC를 ±400V DC로 변환한 뒤 내부 전체를 고전압 직류로 배전하는 것이다. AC/DC 변환 단계를 줄여 효율을 높이고 발열과 냉각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이다. 구글은 전력 공급 장치와 서버를 분리한 랙 설계를 통해 AI 가속기를 최대 35% 더 수용할 수 있는 공간 효율성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1880년대 전류전쟁이 교류의 승리로 막을 내린 지 140여 년. AI와 전기차, 신재생에너지는 초고밀도·장거리 전력 수요를 만들어내며 직류를 다시 무대로 불러냈다. 데이터센터, 전기차 충전망, 해저케이블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전력 인프라 전반을 뒤흔드는 새로운 ‘전류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고송희 기자 kosh11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