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맡기고 이자 받는 ‘암호화폐의 국채’, 스테이킹

입력 2025-09-01 06:00
수정 2025-09-08 08:13
[가상자산 따라잡기]



최근 미국 상장사들 중심으로 기업들의 가상자산 매수세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아키텍트 파트너스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초까지 미국 상장사 154곳이 가상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총 984억 달러 상당의 자금을 모집했다. 특히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이더리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상승하는 모습이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는 인식 아래 주로 가치 저장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반면, 이더리움은 네트워크 검증에 참여하는 스테이킹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킹은 지분증명(PoS) 기반 블록체인에서 가상자산 예치를 통해 금전 네트워크 보안에 기여하는 핵심 참여 방식으로,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이자 형태의 수익을 주지만 검증을 잘못 수행하면 ‘슬래싱(slashing)’이라는 벌금이 부과된다. 특정 보상률에 따른 수익은 예치된 풀 내 비중에 비례해 배분되며, 마치 주식 배당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다. 블록체인 메인넷별 구조에 따라 수익률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장기간 안정성을 검증받은 이더리움의 경우 연 2~3%, 유사한 구조의 솔라나는 6~8% 수준의 스테이킹 수익률을 제공한다.



네트워크 검증에 참여하고 돈 벌기

한편 스테이킹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안전한 투자처인가’, ‘이자는 어디서 나오는가’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디파이(Decentralized Finance·DeFi, 탈중앙금융)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전통 금융 시스템은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감독기관, 예탁결제원 같은 규제기관이 관리하며 거래소와 증권사가 거래를 중개한다. 이는 안전성을 보장하지만 상당한 비용과 절차의 제약이 따른다. 반면 디파이는 이런 중개 비용과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특성상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거래가 이뤄지며, 전 세계 어디서든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디파이를 투자 수단으로서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그 혁신을 가능케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우선 블록체인이 분산원장을 통해 위변조를 방지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네트워크 참여자 수만 개가 동일한 분산원장 사본을 보유해 특정 지갑의 잔고를 보증한다. 그러나 단순히 잔고 기록만으로는 복잡한 금융 계약을 실행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이더리움이나 솔라나 같은 범용 메인넷이다. 이들 네트워크에서는 계좌 잔고뿐 아니라, 계좌 명의로 체결한 계약 내용까지 기록·보증하는 ‘공증’이 가능하다. 이에 더해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면 해당 계약이 자동으로 또는 강제로 이행되는 구속력도 갖추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스마트컨트랙트(smart contract)’다.

디파이는 이러한 스마트컨트랙트 기반 위에서 작동하는 금융 활동이고, 이를 통해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뢰나 중개자 없이도 안정적인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블록체인은 일종의 독립적인 사법·집행 시스템을 내재한 국가와도 같다. 디파이 상품에 투자한다는 것은 제3국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것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계약 관계만 명확하다면 한치의 오차 없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웬만한 이머징 시장 투자보다 더 안정적일 수 있다.



스테이킹 유동화도 가능해져

스테이킹은 디파이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사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자체의 보안 유지에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검증자(validator)들은 자신의 자산을 담보로 걸고 정직하게 거래를 검증하며, 이에 대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

스테이킹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해당 메인넷이 보장하는 ‘기본 금리’에 해당하며, 이는 국가의 기준금리나 단기 국채 금리와 비슷하다. 다만 배당처럼 기업 이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운영이라는 필수 서비스에 기여해 받는 약속된 보상이라는 점에서 채권과 더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가 세수와 국채 발행을 통해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듯, 메인넷도 가스비(네트워크 이용 수수료)와 토큰 발행 등을 통해 스테이킹 보상을 마련한다. 무분별한 토큰 발행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가치 하락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메인넷은 장기적으로 연 2% 수준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해 운영한다. 스테이킹을 국가 경제에 비유하면, 메인넷은 국가, 네트워크 이용 수수료는 세금, 스테이킹은 자국 국채 투자, 스테이킹 보상은 국가 운영을 위한 재정 집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스테이킹과 제도권 금융과의 접점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기술적 혁신을 넘어 제도권이 인정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제도 및 인프라도 상당 부분 갖춰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극심한 변동성과 사건사고를 거치며 혹독한 검증을 거친 메인넷 및 검증자뿐만 아니라, 수탁 측면에서 미국 통화감독청(OCC)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앵커리지 디지털 뱅크와 최대 7억5000만 달러 보험을 내세운 비트고 등이 기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위한 슬래싱·해킹 보험사도 등장했다.

더 나아가 스테이킹된 자산을 유동화해서 마치 양도성예금증서와 같이 다양한 금융 활동에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LST(Liquid Staking Token) 프로토콜의 등장은 시장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또한 스테이킹 이자 부분을 분리해 거래하는 시장 및 만기별 수익률 구조가 발생하는 등 스테이킹은 실제 채권 시장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는 중이다.





제도권 금융 도구로…리스크 점검은 필수

규제 환경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국 SEC가 최근 ‘스테이킹 활동이 증권 발행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공식화하면서, 블랙록에서는 스테이킹 가능한 현물 이더리움 상장지수펀드(ETF)를 신청했다. 아시아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홍콩 규제당국이 ‘스테이킹 가능한 현물 ETF’를 허용하고 있다.

물론 스테이킹 투자 및 상품 운용에 앞서 관련 리스크 점검은 필수다. 메인넷 오작동 및 검증자 운영 실패, 슬래싱 같은 기술 리스크와 더불어 규제·세무 이슈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기관 수준의 수탁사·보험·감사 체계가 갖춰지며 리스크의 정의와 가격 책정이 가능해졌다.

당연하게도 블록체인과 디파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이해가 선행돼야 잠재 리스크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 이제 가상자산 스테이킹은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 제도권이 인정하고 활용하는 금융 도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디파이의 외연이 제도권과 닿아 가고 금융 인프라의 안전망이 촘촘해지는 지금, 이 시장을 막연한 선입견 대신 데이터와 운용 원칙으로 평가할 때다. 과거 브라질 채권이나 베트남 투자에 눈을 돌렸던 것처럼,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진입하는 이 시장을 이제는 진지하게 바라볼 시점이다.

박태우 스페이스바 벤처스 대표 tw@spaceb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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