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평생 비과세…日 2040, 예금 깨서 신NISA로 돈 굴린다

입력 2025-08-11 18:11
수정 2025-08-18 16:16
일본 도쿄에 사는 직장인 사쿠마 도모히로(35)는 요즘 ‘신(新)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통한 연금 재테크에 빠져 있다. 지난해 수익률은 10%, 올해는 20%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사쿠마는 “물가는 상승하는데 임금은 오르지 않아 예금만으론 무리라고 생각했다”며 “직장 동료들과 유튜브를 보며 재테크 스터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금만 하면 자산 까먹는다” ‘현금과 저축의 나라’였던 일본이 변화하고 있다. 닛케이225지수가 2019년 이후 두 배 넘게 올라 지난해 2월 버블경제 시기의 고점을 34년 만에 갈아치우고, 일본 경제가 오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서 벗어나자 안전 자산만 고집하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다다카즈 이즈미 스미토모생명 선임매니저는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하면서 예금만 하면 자산을 까먹는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젊은 직장인은 부모 세대와 달리 국가가 노후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노후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17년 앞선 2007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나랏빚만 1경2000조원에 달한다. 국가가 노후를 책임질 여력이 없다. 일본 정부는 해법을 주식시장에서 찾았다. 아베 신조 전 총리부터 시작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주가 부양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노후 자금 증대에 있다. 임금 소득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주식을 통한 투자 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예금 바보(預金バカ)’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금·현금 선호 현상이 강했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30년 이상 겪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지 않고 집안에 두는 단스(タンス·장롱)예금도 1000조원에 달할 정도다.◇ 新NISA 세제 혜택 대폭 강화일본 정부는 이런 현금 선호를 무너뜨리고, 미국처럼 주가 상승을 국민 자산 증대로 연결하기 위해 주가 부양책과 함께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도입했다. 지난해 1월 신NISA 세제 혜택을 대폭 강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과세 기간을 평생으로 연장했고 연간 납입 한도액을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누적 한도를 600만엔에서 1800만엔까지 세 배씩 늘렸다.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투자 바람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신NISA 계좌를 통해 투자한 자금은 59조엔으로 2023년 말에 비해 24조엔 늘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이 기간 25% 상승했다. 신NISA에 유입된 자금의 40%가량이 일본 증시에 들어온 덕분이다. 계좌 수는 2647만 개로 ‘국민 재테크’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교육 방식도 바뀌고 있다. 2022년까지 공식적인 금융 교육을 받은 일본 국민은 7%에 불과했다. 이후 일본 금융당국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전 투자 교육을 확대하는 등 금융 교육 커리큘럼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해외 주식으로의 분산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일본 개인투자자는 펀드를 통해 총 10조4000억엔(약 98조원)의 해외 금융 상품을 순매수했다. 2015년 이후 최대치다.

반면 부동산을 유망 투자자산으로 보는 시선은 확 줄었다. 일본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4년 55%에서 2005년 40%, 2024년 30%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도루 야마노이 다이와자산운용 운용본부장은 “버블 붕괴 이후 많은 사람이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고통받았다”며 “젊은 세대로 갈수록 부동산은 투자보다 거주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과거 종신고용으로 장래에 대한 불안이 없던 나라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투자해 자산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新)NISA 제도

일본 정부가 소액 주식투자자에게 제공하는 비과세 제도. 작년에 시행된 신NISA는 연간 납입한도를 기존 120만엔에서 360만엔, 총납입액을 800만엔에서 1800만엔으로 확대했다. 비과세 기간도 최장 20년에서 무기한으로 연장됐다.

도쿄=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