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이 관세를 낸다는 말씀이신가요?”
최근 우버 기사와 나눈 대화다. 히스패닉계 미국 시민권자인 이 사람은 미국에 오게 된 연유와 직업, 관심사 등을 물어왔고, 여기에 대한 답을 하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관세로 이어졌다. 놀랍게도 그는 관세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다. 미국 기준에서 해외 기업들이 미국 정부에 내는 세금이라고 알고 있었다. 소비자에게 관세가 제품 가격으로 전가될 것이란 것도 모르고 있었다. "외국 기업이 내는 세금" 오해관세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이 우버 기사만은 아닐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관세 부과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관세를 통해 다른 나라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미국의 재정 적자를 해결하겠다고 말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공약에 대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관세 공약을 지지한 사람 모두가 관세의 구조와 경제적인 여파를 이해했을지는 의구심이 든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고통받던 미국인들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뽑았는데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버 기사는 관세에 관해 설명을 들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선택한 게 옳았다”고 말했다. 아직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지 않은 데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처럼 전 세계에서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 지지층의 핵심적인 생각이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투자 보따리를 들고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푸는 모습이 그들에게 쾌감을 주고 있다.
실제 트럼프 1기 때 부과된 철강·세탁기 관세의 90% 이상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됐다. 표면적으로는 ‘외국이 내는 세금’ 같지만, 최종 부담은 미국 가계다. 그런데도 트럼프 지지층이 관세 정책에 긍정적인 이유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심리적 요인에 있다. 해외 기업과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에 굴복한 듯 보이는 장면이 정치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민주당이 집권한다 해도 이런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내 제조업의 부활과 일자리 확보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인 의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집권해도 '관세 중독' 우려현지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굴복한 기업들의 투자 약속을 마냥 믿긴 힘들다는 시각도 내놓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 선언을 할 수 있도록 투자 계획을 내놨지만 사실상 기존 투자 계획을 재포장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상호관세 협정을 맺은 국가 간 협정에 대한 해석 차이도 문제다. 양 국가 간 합의한 세율이 기존 관세에 합쳐진 것인지 신규로 추가된 것인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라간 관세가 이전으로 되돌아오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정부로선 새로운 세수를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마찬가지다. 관세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일시적인 이슈일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국 기업들이 관세 뉴노멀 시대를 인정하고 장기적인 생존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