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최초 그래미 수상…'케데헌' 속 패션 공식은 [최혜련의 패션의 문장들]

입력 2026-02-03 17:22
수정 2026-02-03 17:49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은 취향을 넘어 시대를 반영한다. 최근 패션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레트로 퓨처리즘 패션(Retro-Futurism)' 스타일이다. 이는 과거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의 모습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을 의미한다. 레트로 퓨처리즘, 과거의 상상에서 오늘의 패션으로1960년대 '우주 시대'를 상징했던 미니스커트와 반구형 헬멧, 1980년대 SF영화 속 유니폼 같은 옷들이 그 예다. 이런 스타일은 현실에 대한 피로감과 불안이 커질수록 더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과거의 낙관적 미래상을 통해 위로받고,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레트로 퓨처리즘 패션은 1960~1990년대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에서 출발한 패션 디자인의 미학이다. 은색 재킷과 둥글게 생긴 고글 선글라스, 실루엣, 금속 광택, 네온 컬러, 유선형 장식 등은 모두 이 스타일의 상징이다.

이 트렌드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불안한 시대에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사람들은 옷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기술과 감성,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레트로 퓨처리즘 패션은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표현 수단이 된다. 외계인 같다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 나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패션은 이제 일상의 '갑옷'이자, 세계관의 확장이 됐다.
패션 디자인계에서는 이 흐름을 반영해 메탈릭, 홀로그램, 투명 소재 등 시각적 실험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업사이클링과 지속 가능한 패브릭을 활용해 과거보다 진보된 패션 이야기를 하고 있다. Y2K, 사라지지 않는 밀레니엄의 감성
이와 함께 다시 떠오른 유행이 있다. 바로 'Y2K 스타일'이다.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짧은 상의, 골반 바지, 나비 핀, 반짝이 립글로스 같은 요소들이 다시 주목받는다.

단순한 유행의 반복이 아니다. 과거의 감성을 지금의 기술과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결과다. 요즘 Y2K 스타일은 발광다이오드(LED) 장식, 스마트폰 필터와 어울리는 메이크업, 디지털 감성을 반영한 액세서리 등으로 재탄생한다. Y2K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를 더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있다. 그들은 패션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한다. 단순히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할까'를 고민한다. 과거에는 스타일이 유행을 따랐지만, 지금은 세계관을 따른다. 스타일이 곧 메시지이자 정체성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오늘날의 Y2K는 스마트폰 필터, 증강현실(AR) 메이크업, 디지털 아바타의 감각과 결합한다. 메탈릭 액세서리와 네온 컬러, 픽셀 느낌의 그래픽 디자인이 Y2K를 더욱 새롭게 만든다. 단지 과거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제3의 스타일'이다.

SNS 플랫폼에서는 이런 스타일이 빠르게 확산된다. 로우라이즈 진, 크롭 톱, 글리터 립, 나비핀, PVC 가방 등은 MZ세대의 SNS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의 짧고 강렬한 영상 속 스타일은 소비자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간다. Y2K는 이제 세계 젊은 세대의 공통된 문화 언어가 되고 있다.


Y2K 패션의 대명사였던 브랜드도 부활했다. '트루릴리젼(True Religion)', '디젤(Diesel)', '본더치(Von Dutch)', '게스(Guess)', '토미 힐피거(Tommy Hilfige)', '쥬시 뀌띄르(Juicy Couture)', '지스타 라우(G?Star?RAW)', '푸브(FUBU)' 등이 다시 핫한 브랜드로 부상하고 있다.

Y2K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과거의 미감을 지금의 플랫폼과 기술, 감성으로 다시 입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Y2K는 한때의 유행을 넘어, 참여형 스타일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K-POP 데몬 헌터스, 스타일이 세계관이 되다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뮤지컬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런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콘텐츠로 꼽을 만하다. 이 작품은 가상의 걸그룹 '헌트릭스'가 무대에서는 노래하고, 무대 밖에서는 악마를 사냥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 장르는 액션과 K-팝,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결합한 '짬뽕'이다.

주인공들은 형광 재킷, 사이버 고글, 메탈릭 부츠를 입고 무대에 선다. 이들의 패션은 레트로 퓨처리즘과 Y2K 감성이 자연스럽게 혼합된 패션 스타일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패션과 음악, 세계관이 하나로 얽혀 있는 복합 콘텐츠다. 시청자는 소비자로서 패션을 따라 하고, 옷과 부츠를 사며, 다양한 아이템을 구매하려고 한다. 자연스럽게 콘텐츠가 패션, 경제와 깊이 연결됐다.


팬들은 주인공들의 의상을 따라 입고, 배경 필터를 만들어 SNS에 공유한다. 댄스 챌린지를 하며 컨텐츠 안으로 들어온다. 과거처럼 '보고 끝내는' 콘텐츠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함께 꾸미고, 표현하고, 확장하는' 시대다.

K-팝은 이제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세계관을 입고, 그 안에 살아가는 문화다. 데몬 헌터스는 그 정점에서 K-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음악과 스타일이 콘텐츠가 되고, 그것이 다시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방식이다.

결국 우리는 단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입고 살아가는 중이다. 패션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언어, 콘텐츠는 그것을 세계로 확장하는 수단이다.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스타일은 그 자체로 미래를 향한 열망이다.

우리가 입는 옷은 이제 감정과 기억, 정체성을 담는 하나의 이야기이며. 과거와 미래, 현실과 상상이 겹치는 이 시대의 우리는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관을 살아가고 있다.

레트로 퓨처리즘과 Y2K,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겉으로 보기엔 각기 다른 현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뉴 제너레이션의 감수성',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공통의 의미가 흐르고 있다.

과거가 그린 미래를 입는 일. 그것은 지금, 우리가 세상을 마주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나를 표현하는 가장 감각적인 언어가 돼 가고 있다.

최혜련 아티스트 디렉터 & 스타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