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2터널에서 발생한 31중 추돌사고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한겨울 눈길에서 안전거리 미확보로 발생한 사고가 화재로 번지면서 5명의 사망자와 43명의 부상자를 초래했다. 반밀폐된 터널의 제한된 피난 경로와 열악한 초기 대응 여건은 터널 내부의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 2022년 12월 경기 과천 인근의 방음터널 화재도 비슷한 문제를 드러냈다. 터널이 대형 재난의 현장으로 돌변한 순간이었다.
국토의 70%가량이 산악지형인 우리나라에서 터널은 효율적인 국가 연결망 구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도로터널은 3924개, 총연장 약 2685㎞로, 20년 전보다 여섯 배 증가했다. 주요 터널에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소화기, 옥내소화전, 제연설비 등 다양한 방재시설이 설치돼 있다. 실제 재난 발생 때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대응 인력의 숙련도가 부족하다면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도로공사는 터널 재난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2016년부터 충북 영동에 ‘터널방재인증센터’ 구축을 추진하고,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발생한 폐터널(475m)을 활용한 이 센터는 국내 유일의 실물터널 기반 교육장이다. 소화기·차량 화재·버스 탈출 등 30종의 체험형 교육을 제공한다. 실제와 비슷한 환경에서 초기 대피, 화재 진압, 인명 구조를 반복 실습해 실전 감각을 익힌다.
2021년 도로터널 관리자 교육이 법제화된 후 센터는 2022년 국토교통부로부터 ‘도로터널 방재교육기관’으로 지정돼 공신력 있는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교육 이수생은 1만 명을 웃돈다. 한국도로공사 직원뿐 아니라 국도·일반도로 터널관리자, 소방대원, 일반인, 학생 등으로 교육 대상을 확대했다. 교육생은 현장 체험을 통해 초기 대피와 화재 대응의 중요성을 체험해 신속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대응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방재 교육은 터널 관리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운수종사자·교통경찰·지방자치단체 담당자 등 초기 대응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교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터널 재난 대응은 여러 기관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교육 대상의 범위가 더욱 폭넓게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교육 콘텐츠 개발과 실전 대응 능력을 체화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의 고도화도 병행해야 한다.
터널은 단 한 번의 방심, 순간의 대응 지연으로 수십 명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실물터널 기반의 체험형 방재 교육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가장 실효성 있는 안전 투자임이 분명하다. 한국도로공사는 실물 방재 터널 교육이 가능한 터널방재인증센터를 중심으로 모든 터널 이용자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재난에 강한 도로망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