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동물용 진단 기술을 기반으로 생애 전 주기에 맞춘 헬스케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진단 기업으로 도약하겠습니다."
김한신 프리시젼바이오 대표는 최근 대전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코스닥 상장사인 프리시젼바이오는 현장진단(POCT) 전문 기업이다. 국내 진단업계에서 유일하게 면역진단과 임상화학진단 분야에 모두 진출해 기술력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팬데믹 이후 성장세가 주춤했던 프리시젼바이오는 재도약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김 대표는 "굵직한 해외 거래선이 재정비된데다 지난해 최대주주가 된 광동제약과의 사업 시너지도 본격화될 것"이라고 했다.
TRF 방식 면역진단 선두주자…반도체·인공위성 기술 접목 프리시젼바이오가 보유한 면역진단 기술은 시분해형광(Time-Resolved Fluorescene, TRF) 방식이다. 형광진단의 일종으로 차세대 면역진단 기술로 꼽힌다. 극소량의 미세한 단백질까지 감지해 정량분석할 수 있어서다. 면역진단은 항원과 항체 반응을 이용해 알레르기, 감염병, 당뇨 같은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이다.
형광진단은 질병 관련 표적에 형광 표지자가 연결된 항체가 붙게 한 뒤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원리를 활용해 분석 대상의 존재 여부와 양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형광물질이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면 전자의 에너지가 높아지고 아주 짧은 시간 들뜬 상태로 피크를 치게 된다. 그리고 안정상태로 다시 돌아오는데 이 과정에서 남은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방출한다. 이 때 방출되는 형광을 광검출기로 측정하는 게 형광진단이다.
일반 형광진단은 빛을 쬐는 순간 표적 물질이 방출하는 형광을 검출하는 방식이다. 잡음 신호 등이 섞여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여러 표적을 동시에 진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TRF 방식은 발광이 오래 지속되는 특수 형광 표지자를 쓴다. 자극광을 쏜 뒤 배경 잡음 형광이 사라지고 나서 오래 지속되는 표지자 신호만 잡는다. 일반 형광진단보다 정확도가 높은 이유다. 게다가 여러개의 표지자를 동시에 검출할 수 있어 다중 진단에도 용이하다. 김 대표는 "개수와 크기 모두에서 경쟁사 제품 대비 100분의 1 수준까지 잡아낼 수 있다"고 했다.
프리시젼바이오가 보유한 TRF 기술은 한단계 더 진화했다. 2차원 이미지 스캐닝 같은 광학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간섭신호를 제거해 고감도 진단이 가능하다. 조명, 카메라, 측정시간 등을 정밀 제어하는 기술도 갖고 있다. 프리시젼바이오의 전신인 테라웨이브가 갖고 있던 인공위성 카메라 기술에 반도체 신호제어 소자 기술까지 접목한 결과다. 여기에다 형광 신호 이미지를 분석하는데 인공지능(AI) 기술도 활용한다. 프리시젼바이오는 면역진단업체 나노디텍과 광학 진단 분석기 개발업체 테라웨이브가 2015년 합병해서 탄생한 회사다.
프리시젼바이오의 TRF 진단 정확도는 글로벌 진단업체들이 보유한 대형 장비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김 대표는 " POCT가 대형 진단장비에 비해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다"며 "하이브리드 센싱 기술을 통해 다양한 질환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유일’ 임상화학진단 기술 보유프리시젼바이오는 임상화학진단 분야에서도 차별화된 기술력을 확보했다. 애보트, 로슈 등 글로벌 진단업체들이 주도하는 임상화학진단 분야에서 제품을 상용화한 곳은 국내에서 프리시젼바이오가 유일하다.
이 회사는 2021년 처음으로 임상화학진단 제품을 출시했다. 임상화학진단은 사람이나 동물의 혈액에서 각종 대사물질을 추출해 분석하는 진단검사다. 건강검진센터, 병원 등에서 주로 실시하는 혈액검사가 바로 임상화학진단이다.
프리시젼바이오는 임상화학진단용 소형 카트리지 집적화 기술을 갖고 있다. 카트리지 하나에 여러 종류의 시약과 촉매를 건조시켜 한번에 다중 검사를 할 수 있다. 미세유체 기술을 적용해 카트리지에 시약을 중첩해서 건조시킬 수 있는 독자 기술도 확보했다. 관련 특허만 300여개에 이른다.
이 회사의 임상화학 POCT 진단은 손가락 모세혈에서 채취한 혈액을 이용한다. 70마이크로리터(㎕)의 피 한방울을 카트리지에 떨어뜨려 혈구와 혈장으로 분리한 후 광학기기로 혈장 내 대사물질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단한다. 미국의 한 실험실에서 동물용 카트리지를 비교 실험한 결과, 대부분의 항목에서 대형장비의 검사값과 90% 이상 일치했다. 김 대표는 "대형장비를 갖춘 대형 병원의 실험실을 초소형 칩에 통합한 것"이라며 "대형 장비에 비해 POCT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고 했다.
프리시젼바이오의 임상화학진단 제품은 간, 지질, 신장, 당뇨 등과 관련한 대사물질 17개를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다. 검사에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다. 김 대표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진단과 관리를 동네 병의원에서도 간편하게 할 수 있다"며 "미국에서는 POCT 기반 임상화학진단 수요가 늘고 있다"고 했다.
"진단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장비 자동화"프리시젼바이오는 현재 면역진단 58종, 임상화학진단 17종의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91억원 가운데 면역진단과 임상화학진단 비중은 3대 7이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면역진단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임상화학진단 보다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큰 시장에서 성장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2026년 세계 체외진단 시장 규모는 1131억 달러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면역진단 비중은 29%, 임상화학진단 비중은 13%다.
프리시젼바이오는 2027년 제품 공급을 목표로 동물용 면역진단 제품을 개발 중이다. 반려동물 호르몬 및 염증 진단제품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심혈관, 감염성, 호르몬, 염증성 질환을 검사하는 사람용 면역진단 제품만 공급 중이다.
김 대표는 "최근 반려동물의 면역진단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동물용 면역진단 시장 진출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확대되는 것은 물론 면역진단과 임상화학진단 사업 간의 시너지도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임상화학진단도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임상화학 카트리지 제품은 사람용 5종, 동물용 12종이다. 사람용은 간, 지질, 당화혈색소 등과 관련된 지표를 정량검사한다. 동물용은 개, 고양이, 소 등 동물별로 제품이 세분화돼 있다. 김 대표는 "지질, 간 등과 관련된 특정 바이오마커들에 대한 맞춤형 진단도 가능하다"며 "제품군을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검사장비 자동화도 진행 중이다. 임상화학진단과 면역진단을 통합한 진단장비도 개발하고 있다. 샘플을 진단장비에 넣으면 추가 조작 없이 결과까지 도출되는 자동화 플랫폼 장비가 개발되면 검사 건수가 많은 중형급 병원과 연구소 등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품목 허가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외상성 뇌손상 및 뇌졸중 의심 환자를 진단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CT, MRI 등 고비용 영상장비에 의존하는 외상성 뇌손상 및 뇌졸중 검사를 혈액으로 15분 이내에 진단하는 제품이다. 현재 서울성모병원에서 탐색임상을 진행 중이다. 내년까지 개발을 마치고 품목 허가 신청을 낼 계획이다.
프리시젼바이오는 지난 7월 말 미국진단검사학회(ADLM 2025)에서 현재 개발 중인 외상성 뇌손상(mTBI) 현장진단 시스템을 공개해 주목받았다. 자체 실험에서 미국 애보트 등 기존 업체들 제품보다 정확도가 더 높은 것을 확인했다.
김 대표는 "외상성 뇌손상 환자의 70~80%는 CT, MRI로 진단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지만 마땅한 진단 수단이 없는 실정"이라며 "증상이 경미한 환자를 걸러내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진단 뛰어넘어 헬스케어 솔루션 팔겠다"프리시젼바이오는 진단 검사에 머물지 않고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전략이다. 기존 POCT 사업 역량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물론 반려동물도 대상이다.
프리시젼바이오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진단 검사기와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을 연동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진단 검사 결과를 EMR에 저장해 빅데이터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앱을 통해 환자 또는 검사자에게 상세한 검사 결과를 알려주고 건강 정보도 제공할 방침이다. 가령 기존 공공 의료데이터와 비교해서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에 걸릴 가능성 등을 알려주고 건강기능식품 등을 추천해겠다는 것이다.
프리시젼바이오는 국내 한의원들과 연계해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프로젝트를 먼저 가동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한의원은 물론 동네 병의원에서 혈액검사만 받으면 질환 위험 등을 알려주고 맞춤형 건강관리 정보도 제공할 계획"이라며 "반려동물용 맞춤형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프리시젼바이오가 헬스케어 솔루션 사업에 정조준한 것은 글로벌 진단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와 무관치 않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대용량 진단검사가 주력이던 시장이 환자 중심의 POCT 진단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화로 인한 질병 확산 속도 증가, 조기진단 스크리닝 등 진단 수요 증가, 맞춤형 치료를 위한 동반진단 수요 증가 등도 글로벌 진단 시장의 새로운 조류다. 김 대표는 "POCT가 단순히 질병 진단에 머물지 않고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판로 재정비…올해 실적 턴어라운드"프리시젼바이오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매출 감소세를 겪고 있다. 2022년 205억원이던 매출은 2023년 204억원, 2024년 191억원에 그쳤다. 동물 진단 시장 글로벌 2위인 미국 안텍과의 공급 계약에 변수가 생긴 탓이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올해부터 매출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걸림돌이었던 해외 판로 재정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다.
최근 안텍과는 유럽 공급 재계약을 논의 중이다. 지난 10년간의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에 대한 신뢰가 쌓인 덕분이다. 또 한국과 북미를 제외한 글로벌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북미 시장은 현지 전문업체와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김 대표는 "안텍이 미국과 유럽에서 동물 진단업체를 잇따라 인수하는 바람에 북미시장 진출에 영향을 받았다"면서 "북미 시장에서 새로운 파트너가 확정되면 북미 매출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최근 일본 니프로와도 사람용 및 동물용 임상화학진단 제품 공급 계약을 맺었다. 니프로는 연매출 4조원 규모의 의료기기 업체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반려동물의 만성질환 관리, 사람용 간질환 조기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병의원, 약국 등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라고 했다.
일본 세키수이와는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RSV) 진단제품의 글로벌 공급 계약을 맺었다. 전문가용 코로나19 진단제품 판권도 논의 중이다. 가정에서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A·B를 동시에 진단하는 제품의 임상과 허가 절차도 착수했다.
프리시젼바이오의 미국 자회사인 나노디텍은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코로나19와 독감 동시 진단키트 정식허가를 받았다. 현재 독감 진단키트 허가 심사도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A·B를 동시에 진단하는 가정용 진단제품의 임상과 허가 절차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사람용 임상화학진단 제품의 FDA 승인 절차도 진행 중"이라며 "내년께 품목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광동제약과 시너지 기대"프리시젼바이오의 최대주주는 지분 30%를 보유한 광동제약이다. 지난해 7월 아이센스에서 170억원에 경영권을 인수했다.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광동제약은 계열사인 프리시젼바이오, 씨티바이오 등을 통해 진단, 건강기능식품 등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프리시젼바이오는 광동제약과 손잡고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은 물론 국내와 해외 판매망도 공유할 계획이다. 프리시젼바이오의 진단 제품과 광동제약의 제약 유통을 결합해 공동 마케팅도 추진할 예정이다. 프리시젼바이오는 최근 씨티바이오와 기술협력 계약도 맺었다. 김 대표는 "광동제약은 물론 계열사들과 협업해 헬스케어 사업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며 "계열사간 협업으로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박영태 바이오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