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 8일 오후 4시 52분
지난달 말 여천NCC 회생을 두고 꾸려진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참석한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폭탄 발언을 이어갔다. 이 회장은 “여천NCC는 자생할 가능성이 없고, 워크아웃(구조개선작업) 신청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디폴트에 빠져도 답이 없는 회사에 무작정 돈을 꽂아 넣을 수는 없다”고 발언했다. 이 소식이 금융권에 전달되면서 여천NCC 임직원들은 금융회사들의 대출 상환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 처리 방안 놓고 ‘강 대 강’ 대치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과 DL그룹은 올초부터 여천NCC의 감산 여부, 추가 자금 지원, 지분율 변동 등 경영 방식을 놓고 갈등을 이어왔다. 여천NCC에서 생산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등에 공급하는 장기 공급 계약이 지난해 말 종료된 데 따른 것이다.
한화그룹은 신규 자금 투입과 단계적 감산을 통해 여천NCC를 살려보겠다는 입장이다.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말 이사회 결의를 거쳐 여천NCC에 1500억원의 자금을 대여해줄 준비도 마쳤지만 DL그룹의 반대에 막혔다. 여천NCC의 합작 계약상 DL그룹이 지원을 반대하면 한화 단독으로도 자금 수혈이 불가능하다.
DL그룹은 여천NCC의 근본적인 경영 부실을 해결하지 못하면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게 낫다고 맞서고 있다. 건설과 석유화학 등 주력 사업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여천NCC에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DL그룹은 “자금 지원을 단독으로 할 테니 부채 절반을 책임지고 여천NCC 경영에서는 손을 떼달라”는 한화 측 제안도 거절했다.
국내 3대 석유화학 산업단지 중 대산에선 롯데케미칼과 HD현대, 울산에선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생산량을 줄이고 설비를 합치는 방안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최대 석유단지인 전남 여수국가산단 권역에서는 여천NCC 문제로 관련 논의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 정부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 실적 악화에 돌아선 DL수년 전만 해도 여천NCC의 부도 위기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2017년 여천NCC의 매출은 5조4160억원, 영업이익은 1조124억원에 달했다.
중국이 값싼 범용 석유화학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여천NCC의 실적은 악화했다. 2022년 적자 전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36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올 1분기에도 618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재무구조도 날로 취약해지고 있다. 1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280.5%에 달했다. 올초 유상증자 방식으로 2000억원의 긴급자금 지원이 이뤄졌지만 오는 21일까지 3100억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산업 호황기 때 과실을 누린 DL그룹이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말했다. DL그룹은 지금까지 여천NCC로부터 2조2000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아갔다.
채권단이 감내해야 할 손실을 감안할 때 DL그룹의 자구노력이 없다면 워크아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DL그룹은 자금 지원 전 경영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일 뿐 워크아웃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DL그룹 관계자는 “여천NCC 정상화를 위해 두 주주사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