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는 흐름이다. 상품만이 아니라 기회와 전략이 함께 움직인다. 크로아티아 리예카항이 그렇다. 북부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이 항만은 지금 유럽 물류 지형의 전환점에 서 있다. 내달 완공 예정인 ‘리예카 게이트웨이’ 1단계 프로젝트는 단순한 인프라 확장을 넘어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진출 창구가 될 수 있다.
총 3억8000만 유로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해운사 중 하나인 머스크의 자회사 ‘APM 터미널’과 크로아티아 물류사인 ‘엔나 로직’이 공동 운영하는 합작 투자사업이다. 완공 시점에는 연간 65만 컨테이너(TEU)를 처리할 수 있고, 대형 선박 2척이 동시에 접안 가능하다. 향후 2단계까지 포함하면 연간 105만 TEU 이상 처리 능력과 함께 전기식 장비, 재생에너지 기반 운영 등 친환경 기준까지 충족하는 스마트 항만으로 완성된다.
아드리아해 북부에서 리예카항이 비교 대상이 되는 곳은 이웃에 위치한 슬로베니아의 코페르항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격차가 크다. 지난해 컨테이너 처리량 기준 코페르항은 113만3000TEU를 기록해 리예카항(40만TEU)의 약 3배 가까이 앞서고 있다. 코페르항은 물류 네트워크, 철도 연결성, 배후 시설 면에서도 우위가 확실하다.
하지만 이 구도가 향후에는 바뀔 수 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유럽연합(EU) 펀드와 국가 재원으로 확보한 60억 유로를 철도 인프라와 신형 열차 도입을 두 축으로 한 사상 최대 변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더해 리예카항에서도 자동화 장비, 미개발 배후지 인프라 구축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반면 코페르항은 항만 부지가 한정돼 장기 확장이 쉽지 않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기업들의 진출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에는 물류 전문기업 로그아시아가 국내 최초로 크로아티아에 진출해 동유럽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의 생산기지로 화물 운송을 담당하면서 향후 발칸 내륙터미널 연계 물류센터 및 동유럽 운송 거점 마련 투자도 검토 중이다. 2024년 7월 초에는 한국타이어도 자그레브에 물류센터를 세워 헝가리 공장과 연계 및 발칸 전 지역의 물류 허브로서의 유통망을 구축했고 7월 말에는 태웅로직스가 리예카에 있는 현지 운송사 ‘LA 트랜스’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2018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스페인, 독일로 확장된 유럽지역 네트워크에 시너지를 더한 것으로 이후엔 크로아티아 내 물류 인프라 투자까지도 검토 중이다. 올해는 부산항만공사가 리예카 배후지에 물류센터 건설 추진을 발표, 민관이 함께 전략적 교두보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중장기적으로 리예카항의 성패는 철도 인프라의 완성 속도에 달려 있다. 하지만 리예카~자그레브 일부 구간이 아직도 설계 단계에 머물러 있을 만큼 진척이 더딘 편이다. 철도망 구축이 늦어질 경우, 항만 확장만으로는 물류 허브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2023년 세계은행 물류성과지수에서 크로아티아는 슬로베니아와 동일한 3.3점(5점 만점)을 기록했다. 전체 139개국 중 상위 30% 수준이다. 세부 항목에서는 크로아티아가 국제 선적, 물류역량, 화물 추적 부문에서 우위를 보였고, 슬로베니아는 인프라와 통관 부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리예카항은 EU 교통회랑 내 4개 핵심 축에 걸친 입지를 갖춰 물류와 운송 인프라가 완성될 경우 새로운 유럽 물류 거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리예카항은 더 이상 단순한 지리적 이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큰 변화의 한가운데 있으며 지금 바로 그 기회를 실현할 기업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선제적 진출 전략과 실질적 파트너십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