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정부 ESS구축 사업 1차전 '압승'

입력 2025-08-07 15:53
수정 2025-08-07 15:54

삼성SDI가 정부가 추진하는 첫 번째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사업에서 총공급 물량의 76%를 확보했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에 비해 가격이 비싼 삼원계(NCA) 배터리를 제시했지만 국내 생산 여부 등을 판단하는 비가격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결과로 분석된다.◇삼성SDI, 8곳 중 6곳 사업 따내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는 최근 총 563메가와트(㎿) 규모 ESS를 구축할 8개 사업자를 선정했다. 사업 대상은 전남(523㎿) 7개 지역과 제주(40㎿) 1개 지역이다. 이 중 진도(48㎿), 고흥(96㎿), 무안(80㎿), 영광(80㎿), 안좌(96㎿), 홍농(29㎿) 등 6곳은 삼성SDI의 배터리가 공급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표선(40㎿), 광양(96㎿) 두 곳에 이름을 올렸다. 사업자들은 각 지역 변전소 인근에 2026년까지 ESS 설비를 구축하고, 15년간 전력거래소의 급전 지시에 따라 충·방전을 수행한다. 사업 규모는 1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당초 삼성SDI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것으로 내다본 업계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다. 삼성SDI가 삼원계 배터리를 내세운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이에 비해 10~15%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웠다. 삼성SDI는 입찰을 따내기 위해 막바지에 납품 단가를 경쟁사가 제안한 LFP 배터리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마진을 거의 포기한 승부수였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또 국내 생산을 특히 강조해 비가격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앞서 사업자 선정 기준과 관련 국내 산업 기여도, 고용창출 효과 항목에 비가격평가 점수 100점 만점 중 24점을 부여했다. 중국산 배터리를 배제하려는 요소였다. 삼성SDI는 ESS 배터리 셀 대부분을 울산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점을 강조해 이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따냈다. 주력 ESS 제품인 ‘삼성배터리박스’(SBB)는 현재 울산과 중국 시안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삼성SDI 측은 울산 공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는 화재 예방 기술이 적용된 SBB를 적용해 안전성 보강에도 신경 썼다. LFP 대비 삼원계(NCM·NCA)가 화재·폭발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삼성SDI가 자체 개발한 EDI(모듈 내장형 직분사 화재 억제 기술)를 통해 ESS 안전성을 높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 난징에서 대부분의 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비가격 점수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며 수주전에서 밀렸다는 분석이다. 또 삼성SDI가 마진이 없는 수준으로 입찰가를 낮출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은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이게 됐다. SK온은 ESS를 신사업으로 삼고 본격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해외 업체들과 수주 논의를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ESS 사업을 벌일 기회였지만 내년도 기회를 다시 노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국내 시장 회복 계기”이번 ESS 입찰 결과에 대해 국내 ESS 시장과 생태계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17~2019년도만 하더라도 태양광발전소 증가와 함께 국내 ESS 시장은 대호황기였다. 하지만 ESS에서 지속적으로 화재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국내 수요가 사라졌다. 화재를 겪은 배터리사들은 더 이상 ESS 시장에 투자하지 않았고, 글로벌 ESS 시장에서 중국에 점유율을 뺏기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이번 사업을 시작으로 2038년까지 약 20GW ESS를 설치할 예정이다. 약 40조원으로 연평균 2조8500억원 규모다.

특히 입찰 결과를 통해 국내 생산에 높은 가점을 줄 것이란 의지를 드러낸 만큼 국내 생태계가 함께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입찰을 따내기 위해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모두 국내 ESS 배터리 라인 증설이 필요해졌다. 경쟁사가 시설을 늘리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함께 늘릴 수밖에 없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현재 계획된 입찰 물량은 국내 배터리 라인 증설을 유도할 만한 충분한 규모”라며 “한국 배터리사들의 국내 증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