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름밤을 수놓은 슈트라우스의 숨결

입력 2025-08-06 17:26
수정 2025-08-07 00:17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가 지난 5일 개막했다. 공연의 시작은 네덜란드·몰타 국적의 지휘자 로렌스 레네스가 이끄는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2021년 서울 예술의전당이 한국예술경영협회와 함께 창단한 악단이다. 매년 8월 열리는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에서 처음과 끝을 책임지고 있다. 레네스는 2012~2017년 스웨덴 왕립오페라 음악감독을 맡으며 오페라와 교향악 모두에서 열정과 섬세함을 균형감 있게 소화한 인물이다.

개막 공연에서 그가 선보인 서막은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초기작 ‘돈 후안’이었다. 빠르게 리듬을 끌어올리는 현악기와 음을 내리꽂는 목관악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레네스는 호쾌한 손짓으로 단원들을 이끌며 여름 분위기에 맞는 청량한 소리를 살렸다. 협연자 없이 이어간 다음 무대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모음곡. 현악기 음량을 줄여놨다가 폭발시키듯 단번에 소리를 끌어내는 지휘가 인상적이었다.

단원들 면면에서도 독일 음악의 색채를 느낄 수 있었다. 제1바이올린 악장을 맡은 이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 제2바이올린 악장을 지낸 연주자다.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 출신인 강별, 밤베르크 심포니 부악장 출신 설민경 등 바이올리니스트도 악단의 독일 음악 해석에 힘을 보탰다. 악단의 제2바이올린 수석인 신동찬, 비올라 수석 신경식 등도 독일에서 공부하거나 단원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공연 2부는 슈트라우스의 자전적 교향시 ‘영웅의 생애’였다. 압권은 이 곡의 세 번째 장면인 영웅과 반려자의 사랑을 표현하는 대목에서 이지혜 교수가 보여준 애절한 독주였다. 그는 힘이 넘치는 소리를 내는 대신 현의 떨림을 섬세하게 다듬어가며 감정을 세밀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네 번째 장면인 전투 대목에선 팀파니의 트레몰로(계속된 떨림)와 우렁찬 소리가 무대를 장악했다. 군대가 행진하며 내는 군화 소리와 총성을 재현한 듯했다. 마지막 여섯째 장면에선 현악기들이 약간의 쓸쓸함이 섞인 포근함으로 영웅의 마지막을 기렸다.

이날 단원들의 합이 최고조인 건 아니었다. 비올라와 첼로의 박자가 약간씩 엇갈리거나 성부 간 소리가 고르게 섞이지 않은 때도 있었다. 축제를 위해 모인 기획 악단이 감수해야 할 아쉬움이었다. 대신 단원 저마다의 색채는 뚜렷했다. 악장뿐 아니라 현악기와 목관악기 단원들이 내는 각각의 음색을 가려듣는 재미, 이들의 소리가 빚어낸 다채로움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레네스와 호흡을 맞추는 단원들의 표정에도 즐거움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악단은 긴장과 이완이 확실히 나타나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으로 이날 공연을 마무리했다.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오는 10일 폐막 공연도 맡는다.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뒤 말러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8일엔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와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각각 리사이틀로 청중을 만난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