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김성훈의 지속 가능한 도시] 파리, 혁명은 진행 중

입력 2025-08-11 17:16
수정 2025-09-12 17:02
한때 오염의 상징이었던 파리 센강이, 약 100년 만에 시민을 위한 수영장으로 되살아났다. 1923년 공식적으로 수영이 금지된 이후, 수질 개선 노력을 거쳐 시민들에게 친수 공간을 되돌려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파리가 녹색도시이자 생태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센강 수영장 개장은 단순한 여가 공간 조성을 넘어, 도시의 생태적 건강을 회복하고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지속 가능한 도시 정책의 핵심적인 성과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센 강 정화는 단지 2024년 올림픽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시민의 삶과 도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파리는 예로부터 ‘혁명의 도시’로 불려왔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전 세계에 확산시켰듯, 오늘날의 파리는 ‘지속가능성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누려온 풍요와 편리함은 지구 환경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탄소는 끝없이 배출되고, 도시는 끊임없이 확장됐으며, 그 대가는 기후 위기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는 미래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이 전환의 시대에, 파리는 다시 한번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

파리의 지속가능성 혁명은 지구와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부터 바꾸려는 시도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미래 세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도시 차원에서 새롭게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시의 구조, 시민의 삶의 방식, 사회 시스템 전반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재설계하는 포괄적인 변혁이다. 파리의 이러한 철학은 도시 곳곳에서 ‘생각하고 헤아림’, 다시 말해 사랑의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파리의 지속가능성 혁명은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거리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의 거리는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 자전거, 대중교통이 주도하는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전용 도로는 일상의 주요 이동 수단이 되었고, 한때 차량으로 가득했던 센 강변 고속도로는 시민의 휴식처 ‘파리 플라주’로 탈바꿈했다. 이는 인간 중심 도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4 파리 올림픽 역시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다. ‘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라는 슬로건 아래, 새로운 건축 대신 기존의 역사적 공간을 적극 활용하며, 파리는 지속 가능한 도시 운영의 모범을 실천하고 있다.


잃어버린 초록을 되찾는 노력 또한 파리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이다. 도시는 더 이상 콘크리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건물 옥상은 정원이 되고, 벽면은 초록 식물로 덮이며, 유휴 공간은 도시 농장으로 재생된다. ‘15분 도시’ 개념은 시민들이 집 근처 15분 거리 안에서 공원이나 정원 같은 푸른 쉼터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도시 계획을 유도하며, 도시 미관 개선은 물론 열섬 현상 완화, 도시 생태계 회복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서울보다 훨씬 높은 인구 밀도를 지녔음에도, 파리가 더 여유롭고 쾌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시 전역에 촘촘히 배치된 공원과 정원, 그리고 사람 중심의 공간 설계 덕분이다.

물론, 지속가능성 혁명의 길이 언제나 순탄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책들은 때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거나, 경제적 부담을 둘러싼 논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2015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 협정’이 채택된 도시로서, 파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를 선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파리의 지속가능성 혁명은 단순한 환경 문제 해결을 넘어선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달려온 인류 문명이 이제는 '함께, 그리고 오래' 살아갈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전환의 상징이다. 과거에 인류 보편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듯, 파리는 이제 지속가능성이라는 21세기의 새로운 가치를 도시라는 실천의 공간에서 구현하며, 전 세계 도시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파리는 지금, 21세기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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