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클래식 음악계가 한국인 신동의 등장에 환호하는 사건이 지난달 터졌다. 16세에 불과한 첼리스트 이재리가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제6회 쇤펠트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결선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팬들은 그의 이름을 중국식 발음인 “이짜이리”라고 부르며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현지 악단들도 러브콜을 보냈다. 이재리는 올 연말 홍콩침례대에서 공연한다. 비슷한 시기 홍콩필하모닉과도 협연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여름엔 베이징에서도 공연하기로 했다.
인기에 들뜰만 했지만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아르떼가 만난 이재리는 차분했다. 콩쿠르 결선에서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연주한 직후에도 우승 생각은 없었다고. 이재리는 “연주에 아쉬운 부분들이 남아 있었다”며 “다른 참가자들도 연주를 잘해서 우승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질주한다”는 현지의 극찬에도 그가 의연했던 배경이다.
공연에 집중하면 그날 끼니는 나중
이재리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원하는 소리를 낼 때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는 항상심이야말로 그의 재능이다. 이재리의 맘에 찼던 공연은 인생에 단 한 번뿐. 2019년 다비드 포퍼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다.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음악적 해석도 맘에 들었다던 무대다. 눈여겨볼 건 자신의 강점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다. “강렬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 노래하듯 표현하는 부분에서 애절하거나 달콤한 느낌을 잘 표현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도 달콤한 느낌을 연구하는 걸 좋아해서 어느 정도 동의해요.”
사실 그는 대치동 키즈였다. 어머니가 국악을 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은 취미로만 하겠다”고 못 박았다. 음악보단 영어공부를 좋아했다. 첼로에 입문한 건 6살 끝 무렵이다. 유치원에서 친구가 첼로를 켜는 모습이 멋져 보였단다. 첼로의 풍부한 저음과 넓은 음역대가 주는 매력에 빠진 이재리는 초등학교 1학년생일 때 나간 국내 콩쿠르에서 덜컥 우승한다. 권혁주음악콩쿠르, 도암음악콩쿠르, 벨기에 이자이 주니어 콩쿠르에서도 1위에 오르거나 대상을 탔다. 꿈의 무대인 뉴욕 카네기홀에도 올랐다.
이재리는 평소 말수가 적지만 첼로와 함께라면 대담해진다. 그에게 음악이란 “스스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이가 들며 루틴도 생겼다. 공연이 잡힌 날엔 스마트폰을 안 본다. 식사도 거른다. 연주에 최대한 집중하려 해서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진 악보를 계속 본다. “연주 시작 직전엔 악보 한두 줄을 노래로 미리 불러봐요. 그러면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요. 곡을 해석할 땐 작곡가의 의도를 따르려고 해요. 한창 배우는 나이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 박수에 희열 느끼고 싶어요”
올해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이재리는 학창 생활이 한창이다. 친구들과 노는 모습은 여느 또래들과 같다. 평소엔 K팝을 즐겨 듣는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팝 창법을 배웠을 정도다. 이재리는 “심심할 땐 영화를 많이 보는데 공포영화를 특히 좋아한다”며 “(미디를 찍는) 작곡도 취미로 했었는데 컴퓨터가 고장 나면서 노래 쪽으로 취미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일도 버킷리스트다. 초등학교 2학년생 때 피아노를 배웠지만 첼로에 집중하느라 좀처럼 건반을 치지 못했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피아노 작품을 즐겨 듣는다. 낭만주의 음악 중에서도 달콤한 곡들이 끌린다고. 제일 좋아하는 곡은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작곡가도 슈만이다.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도 녹음해 보고 싶지만 음악적으로 더 성숙해진 뒤 도전하겠단 생각이다. 롤모델로는 200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요하네스 모저를 꼽았다. “모저는 소리, 기술, 파워가 엄청나 아무나 그 수준에 따라갈 수 없어요. 어떤 협주곡을 다루더라도 작곡가의 의도에 맞게 해석해내는 첼리스트예요.”
배울 게 많은 이팔청춘. 이재리는 내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다. 이미 김대진 한예종 총장이 왼손 악력을 키우기에 좋은 운동기구를 추천해줬다고. “정석적인 해석을 하면서도 저만의 생각이 들어간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요. 카네기홀 무대에서 연주했을 때 관객분들이 보내주셨던 박수에 느꼈던 희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기쁨을 계속 느끼고 싶어요.”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