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온 배우 유성주, 늦은 시작이 더 찬란한 이유

입력 2025-08-04 11:17
수정 2025-08-05 14:02
유성주 배우의 첫 영화는 불과 5년 전 작품인 <강철비2: 정상회담> (양우석)이다. 그의 놀랍도록 짧은 필모그래피가 의외인 것은 그가 한국영화에서 꽤 오래,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작품에서 활약한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착시(?)의 원인은 그가 맡은 캐릭터보다 더 강렬하고, 더 두꺼운 인장을 찍는 배우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때로는 본인의 영화보다 더 빛나는 배우, 유성주와의 인터뷰는 그렇기에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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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껏 언론 인터뷰를 거의 안 하신 것 같다. 이번 인터뷰가 거의 유성주 배우의 첫 매체 인터뷰라서 귀한 자료로 남을 것 같다 (웃음).
"사실 내가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인가 고민을 조금 한 것도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하고 싶은 일, 주어진 일을 계속해왔을 뿐인데 그게 인터뷰 거리가 될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기회에 이제껏 해왔던 작품들,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든다."

▷유성주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는 2020년, 드라마는 2018년으로 데뷔가 늦은 편이다. 다만 훨씬 이전에 부산에서 연극으로 연기 커리어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바로 연극을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고등학교 때 부산에서 연극을 하나 보고 인생이 바뀌었달까 (웃음). 그 연극을 보자마자 학교에 연극반을 만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인문계 남자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이 웬 말이냐는 의견들이 많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설득을 해서 연극반이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대학교도 연극영화 관련으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갤러리 시어터’라는 극단을 만들어서 연극을 시작했다. 주로 창작극을 하는 극단이었는데 실험적인 시도는 많이 했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점이 없지 않았다. 결국 생활에 있어 조금 더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부산시립극단에 들어가서 40살이 될 때까지 연극을 했다."

▷2012년에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 연극 인생의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된다. 정확하게는 대학로에서 말이다. 부산에서 대학로로 활동의 거점을 옮긴 이유가 있는지.
"국공립 극단에 들어가서 안정을 찾았다면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시립에 속해있다보면 같은 멤버들과 같은 작품들을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 많은 실험과 도전을 원했던 것 같다. 그때 더 넓은 대학로로의 행보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유성주 배우의 시점에서 부산의 연극 씬과 대학로의 연극 씬은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하다.
"내가 그때 가지고 있었던 결핍이라면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스토리였다. 부산에서 오래 있다 보니 함께 작업하는 멤버들도, 프로젝트도 점점 새로운 것이 소멸되어 가는 듯했다. 대학로에서는 함께 하는 배우도, 스탭들도, 작품도 매번 새로웠다. 정말 대학로에 많은 배우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새로운 이들과 새로운 팀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대학로에서 만난 동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는지.
"대학로에서 만난 새로운 동료는 아니지만 재회한 친구, 유재명 배우가 내겐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부산에서 연극을 할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친구였지만, 내가 서울로 넘어왔을 때 재명 배우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주변에 내 존재에 대해서 알리기도 하고, 내가 <SKY 캐슬> 촬영을 시작하면서 차가 필요했을 때 집에 세워져 있는 차가 있다며 쓰게 해주기도 했다 (웃음). 유재명 배우는 좋은 친구이자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소주를 마실 수 있는 귀한 존재다 (웃음)."

▷드라마 <SKY 캐슬>이 첫 매체 연기의 도전이다. 오랜 연극 커리어를 뒤로하고 매체로의 이행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이전에도 드라마 쪽 캐스팅 디렉터나 조연출 같은 분들이 내 공연을 보고 제안을 주신 적이 많았다. 다만 그때는 내가 연극을 너무 좋아하기도 했고,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공연 라인업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매체는 늘 내가 미뤄 오던 과제 같은 것이었다. 이후에 국립 극단에 있었던 <SKY 캐슬>의 조연출이 연출과의 미팅을 제안해주셨는데, 그때만큼은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한번 만나보자는 생각을 하고 나간 자리가 궁극적으로는 나의 커리어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SKY 캐슬 8회 | JTBC Drama]
▷첫 영화가 불과 5년 전이라 놀랐다. 워낙 역할마다 인장을 찍는 배우라 작품을 한지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 가늠했던 것 같다. 유성주 배우의 첫 영화는 2020년에 개봉한 <강철비2: 정상회담>이다. 처음으로 접하는 영화 세트의 경험은 어떤 것이었나.
"일단 로케이션의 크기나 스탭의 수 같은 현장의 스케일을 보고 많이 놀랐던 것 같다. 드라마 촬영 때 보다 훨씬 더 커서 매우 긴장했다. 사실 뭘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우아, 우아만 하다가 온 기분이다 (웃음)."

▷유성주 배우는 <서울의 봄>, <야당>, <행복의 나라> 등의 상업 영화 안에서의 아이코닉한 연기로도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독립영화에서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특히 최근에 공개되었던 독립영화, <엄마의 왕국> (이상학, 2024)에서의 광기 어린 연기는 더 큰 영화에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을 정도로 강렬했다. 유성주 배우가 생각하는 독립영화 작업이란 어떤 것인가.
"마치 연극 작업과 비슷하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처럼 ‘감독 이하’의 체제라기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성격이 강하다. 감독과 시나리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고, 나의 의견, 혹은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이야기가 바뀌기도 한다. 창작과정을 함께 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결과물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겁다. <엄마의 왕국>도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모두 함께 고민해 가면서 완성한 영화다. 이상학 감독과는 최근에 국립현대무용단이 주최하는 단편 영화 작업도 같이했다."



▷<큰엄마의 미친봉고> (2021)에서 함께 작업했던 백승환 감독 연출의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의 개봉(8월 22일)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유성주 배우는 사제 역할을 맡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제를 그만두고 민간인으로 돌아가는 인물인데, 모든 걸 뒤로하고 광화문을 걷는 유성주 배우의 해탈한 듯한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천주교를 은퇴하고 불교로 귀화하는 표정이랄까 (웃음).
"원래 그 시퀀스는 애초에 대본에는 없었던 부분이다. 그저 조용히 떠나는 것이 설정이었는데 나중에 추가되었다. 물론 내 캐릭터에 있어서는 나쁠 게 없다 (웃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도 꽤 개성이 강하다. 박명훈 배우가 맡은 사이비 무당이나 이중옥 배우가 맡은 광신도 캐릭터 모두 강렬한 역할들이고, 만약 서로 다른 걸 했었어도 색다른, 그리고 흥미로운 캐릭터로 소화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여태까지 한국영화에서 악역으로 부상한 배우들을 보면 주로 연극 무대에서 오래 활동했던, 그리고 매우 재능 있는 배우들이다. 마치 한국 상업 영화의 악역이 이들의 등용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연극 출신 배우들이 정형화된 악역을 맡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는지.
"사실 한국 영화의 악역이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악역이 갖고 있는 카리스마와 강렬함이 있지 않나. 따라서 신선한 얼굴이 악역을 했을 때 임팩트가 배가 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동시에 악역은 자기 것으로 표현할 만한 변주의 요소가 많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연극 출신의, 경력이 있는 배우지만 얼굴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이제껏 한 번도 못 해본 역할이 있다면?
"워낙 다양한 연극, 역할들을 많이 해와서 그런지, 못해 봐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 따로 있진 않다. 다만 몇 년 전부터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늘어나면서 연극을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연극무대 자체도 그립지만, 첫 리딩을 하는 그 순간이 더 그리운 것 같다. 연습을 끝내고 모두 합을 맞춰보는 그 순간. 그때 느껴지는 설레임과 희열 같은 것은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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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주 배우는 뛰어난 배우이자, 오랜 시간 동안 ‘무대’라는 마이크로코즘에서 연기 예술 하나만을 실행해 온, 견고하면서도 보기 드문 아티스트였다. 그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에 재능있는 아티스트가 가진 소양과 비전까지 갖춘 듯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제야 드라마에서 독립영화까지, 그의 연기 스펙트럼에 맞는 마땅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보여줄 더 넓고 찬란한 여정이 그 어느 때 보다 설렌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