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 백화점 등이 출점할 때 인근 전통시장과의 상생 협력을 위해 조성하는 ‘상생자금’이 일부 상인회장과 임원진의 ‘쌈짓돈’처럼 쓰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감시 감독할 지방자치단체는 상인회 측 재량권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손을 놔 ‘눈먼 돈’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모바일·비대면 등 국내 유통환경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는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자금을 대수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4일 경기도와 수원시,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이 지난해 1월 ‘스타필드 수원점’을 개점하면서 수원 22개 전통시장상인회에 지급하기로 한 상생자금이 총 1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세계가 상인회 22곳과 약정을 맺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각 상인회에 1억원씩 내놓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상생자금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등을 도입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후 출현했지만 실제로는 법에 없는 개념이다. 다만 지자체가 대규모 점포를 짓는 유통기업에 지역 소상공인과 협력할 방안을 모색하도록 했다. 이를 근거로 백화점·마트 등을 대상으로 ‘강요된 자진납세’가 시작된 셈이다.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가 전통시장에 돈을 내라고 종용하다 보니 기업 처지에 버틸 재간이 없다. 2014년 개점한 타임빌라스 수원점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상인회 22곳에 5년간 180억원을 입금해야 했다. AK플라자 수원점은 45억원을 냈다.
문제는 이렇게 모인 상생자금이 전통시장 리모델링이나 시설 개보수 등이 아니라 상인회 고위 임원의 사적 용도로 쓰인다는 점이다. 상당수 상인회가 회장 업무활동비로 매달 100만원을 꼬박꼬박 지급하고 간부 야유회와 명절 선물 단체구매 등에도 적잖은 자금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의 팔을 비틀어 법에도 없는 돈을 내라고 해놨으니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상생자금을 폐지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리/조철오/김유진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