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복수노조 체제에서 ‘어용노조’(대항노조)와만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용자에 대해 적법한 노조가 과거 기간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처음 판단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3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이행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삼성물산이 금속노조와의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2011년 7월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노동자들은 A노조 설립 후 전국금속노조에 가입해 삼성지회로 전환했다. 삼성지회는 매년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삼성물산은 같은 해 6월 설립된 에버랜드노조와만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체결하며 삼성지회의 교섭 요구를 무시했다. 에버랜드노조는 2013년부터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해 2020년까지 삼성물산과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금속노조는 2020년 4월 2011~2020년의 임금, 노동시간, 복지후생 등 근로조건 단체교섭 이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단체협약은 성립 시점부터 효력을 지니며 임금 및 단체협약 사항을 소급해 준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2심은 “에버랜드노조는 실질 요건을 결여한 대항노조로서 노조 지위를 인정할 수 없고, 원고는 청구 기간 단체교섭권을 가진 유일한 적법 노조”라며 1심을 뒤집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교섭권 판단 기준을 청구 시점이 아니라 교섭 대상 기간으로 본 것이다. 금속노조는 청구 시점인 2020년 당시 교섭대표노조가 아니었지만 교섭 대상인 2011~2020년에 적법한 지위를 가진 노조였기 때문에 이후 시점에도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향후 복수노조 상황에서 법적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명철 율촌 변호사는 “과거 어용노조와 적법노조 외에 현재 제3의 교섭대표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법원이 과거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면 권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재와 과거 간 노조 권한 충돌 문제를 해결할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