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대북 심리전을 위해 전방에 설치한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기 시작했다고 4일 발표했다. 대상은 고정식 및 이동식 확성기 전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유화책의 일환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야당은 “이재명 정부가 평화라는 자가당착에 빠져 국방을 허무는 어리석은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브리핑을 열어 “군의 대비 태세에 영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남북 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조치를 시행한 것”이라며 “2~3일 내 확성기는 모두 철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약 1주일 뒤인 지난 6월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약 두 달 만에 기반 시설인 확성기를 아예 철거하는 것이다. 대북 확성기는 윤석열 정부 시절이던 지난해 6월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와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등 도발에 맞서자는 취지에서 재설치됐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최초로 시행한 이후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대북 확성기가 철거된 가장 최근 사례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5월이다. 남북이 당시 체결한 판문점선언을 통해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데 따른 조치다.
이재명 정부가 대북 확성기 철거에 나선 것은 대북 유화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군의 대북 확성기 철거 조처를 두고 “남북 간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조치의 하나”라며 “대통령 지시에 따른 확성기 방송 중단의 연장선상에서 철거 조처를 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가 북한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입장문을 내고 “문재인 정부 때 실패한 정책을 이재명 정부가 또 들고나왔다”며 “북한의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최적의 수단을 스스로 없애는 누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군 일각에서도 과도한 대북 양보가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 당국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논의를 거쳐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기간 시행하는 야외기동훈련 일부를 다음달 이후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