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불고 있는 ‘일풍(日風)’이 심상치 않다. 일본 여자골프가 올 시즌 메이저 대회 2승 포함 4승을 합작했다. 일본이 최근 2년 연속 메이저 대회에서 2승씩을 거두면서 한국, 미국 등을 위협하는 여자골프 강국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4일(한국시간) 영국 웨일스 미드글러모건의 로열 포스콜GC(파72)에서 끝난 여자골프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AIG여자오픈에서 일본의 신인 야마시타 미유(24)가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우승했다. 공동 2위 찰리 헐(잉글랜드), 가쓰 미나미(일본)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첫 우승을 거둔 야마시타는 우승상금 146만2500달러(약 20억3000만원)를 챙겼다. ‘메이저퀸’과 함께 신인왕 1순위야마시타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를 평정한 뒤 LPGA투어에 진출한 실력파 선수다. 2021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JLPGA투어에서 4년간 뛰며 13승을 쓸어 담았다. 2022년과 2023년엔 2년 연속 상금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퀄리파잉(Q) 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하면서 데뷔 전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장이 150㎝에 불과한 야마시타는 정확도가 강점이다.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LPGA투어 선수 가운데 146번째(224m)로 짧지만, 페어웨이 안착률 4위(79.79%), 그린 적중률 35위(71.01%) 등 뛰어난 샷 정확도를 자랑한다. 벙커 세이브율은 전체 2위(62.75%)다. 그만큼 공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야마시타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올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신인상 레이스에서 990점을 쌓은 그는 2위 다케다 리오(978점·일본)를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일본 출신 쌍둥이 자매인 이와이 치사토(606점)와 이와이 아키에(422점)가 3~4위로 뒤를 잇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인왕 경쟁은 일본 선수들의 집안싸움이 됐다. 윤이나는 7위(267점)로 사실상 경쟁에서 밀려난 상태다. 급성장한 日, 한국 위협일본 여자골프는 야마시타의 우승과 함께 올 시즌 한국과 같은 4승을 쌓았다. 그런데 내용만 놓고 보면 일본이 우위다. 올해 다섯 개 메이저 대회 가운데 2승을 챙겼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셰브론 챔피언십에선 사이고 마오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이번 대회에서 야마시타가 정상에 섰다. 작년에도 메이저 대회 2승을 거둔 일본은 최근 2년 새 네 명의 메이저 퀸(사소 유카·후루에 아야카·사이고·야마시타)을 배출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올해 메이저 대회에서 1승도 거머쥐지 못했다. 최근 15년 동안 한국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은 2021년과 202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나마 위안은 올해부터 방신실과 황유민 등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점이다. 아울러 이번 대회에서도 김아림이 공동 4위에 올랐고, 김효주와 임진희 등도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내고 있다.
일본 여자골프의 기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LPGA투어에 데뷔한 일본 출신 다섯 명의 신인 중 세 명이나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경쟁력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골프계 관계자는 “올해 데뷔한 일본의 어린 선수들이 하나같이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JLPGA투어 포함 일본 여자골프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일본 여자골프의 최근 급성장은 2013년부터 JLPGA가 시행한 투어 강화 정책의 결실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JLPGA의 적극적인 문호 개방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유망주 발굴·관리가 일본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였다고 말한다. 이시우 코치는 “일본은 관리 면에서 확실히 다르다”며 “한 가지 예로 일본 선수들은 매니저, 코치, 트레이너와 한 팀을 이뤄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폰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기에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남다르다”고 덧붙였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