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동맹국의 공급망까지 무기화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자국 첨단 전략산업 육성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던 서구 경제학자들도 첨단 전략산업 국가 개입을 제한적으로 찬성하기 시작했다. 주요국의 ‘자국 기업 우대정책’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았다. 세계가 ‘신산업정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권은 기업에 어떤 칼과 방패를 주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 이사가 회사뿐만 아니라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단기적으로 주주의 기대를 높였을지 모르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장기적, 전략적 투자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경영자가 모든 주주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목표와 자원을 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전략의 핵심인 ‘선택과 집중’이 어려워진다. 의견이 다른 주주들의 소송으로 경영자가 배임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 소송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만으로도 경영자의 소신 있는 장기 투자가 위축될 것이다.
2차 상법 개정안으로 논의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안’이 통과되면 한국 주요 기업의 경영권은 해외 투기자본과 중국 등 경쟁국 자본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300개 상장기업의 74%가 2차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의 3대주주는 중국 기업 텐센트 계열이고, 카카오페이 2대주주도 중국 알리페이다. 올초 미국 국방부는 텐센트를 중국군 협력회사 명단에 올렸고, 카카오페이는 이용자 4000만 명의 정보를 알리페이에 넘겨 물의를 빚었다. 부동산, 게임, 엔터테인먼트 쪽에 치중하는 중국 자본은 아직 경영권을 위협하진 않지만 배터리 등 첨단 전략산업에 합작 투자 형태로 진입하고 있다.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자율이 아니라 강제로 의무화하는 것도 문제다. 세계적으로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 소수 국가뿐이다.
최근 규제는 한국 기업을 배임죄와 외국 자본의 위협에 더 노출시키고 있다. 이런 규제가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기업에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라도 줘야 한다. 자국 기업 우대 추세의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우리 기업에 창과 칼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방패라도 쥐여줘야 할 것 아닌가. 기업에 시급히 필요한 방패막은 배임제 전면 폐지, 경영 판단의 원칙 명문화와 함께 외국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포이즌필(기존 주주에게 낮은 가격으로 지분 매수권 부여) 황금주(지분율과 관계없이 주주총회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 차등의결권(주식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수 차등 부여) 도입이다. 한국 기업은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 기업의 파상공세와 미국의 관세폭탄에 끼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