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자 PTSD 유발하는 '이 운동'…한국만 빼고 난리라는데 [이혜인의 피트니스 리포트]

입력 2025-08-02 08:23
수정 2025-08-02 10:00


“군대에서 질리도록 했던 그거, 요즘 미국에선 돈 주고 한다고?”

예비역이라면 입에서 한숨부터 나올 이야기. 그런데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러킹(rucking)’ 열풍이 거세다. 무게를 담은 백팩·조끼를 메고 걷는 운동, 말 그대로 군장 행군을 연상케 하는 활동이 새로운 피트니스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러킹은 피트니스 시장의 변화 흐름을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소비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레드오션이 된 러킹 시장. 하지만 군장 행군에 익숙한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서적 거리감이 크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이 운동은 한국에서 ‘가장 익숙하지만 낯선’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까? ○회복 중심 트렌드와 ‘러킹’고강도 크로스핏, 인터벌 트레이닝…. 2010년대에는 고강도 운동이 피트니스 시장을 주도했지만 최근 들어 운동 트렌드는 ‘회복’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피트니스 웨어러블 기기들 역시 ‘심박 변이(HRV)’와 ‘회복 지수’를 강조하고, 전문가들은 “이제는 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AP통신은 “과거 피트니스 산업을 지배하던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철학이 결국 과훈련과 부상으로 이어졌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회복’이 핵심 키워드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운동협회(ACSM)와 미국스포츠의학아카데미(NASM) 등 주요 기관들 역시 최근 들어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 주목받는 운동이 바로 러킹이다. 동작은 단순하다. 걷기에 무게만 더하면 된다. 하지만 효과는 강력하다. 일반적인 걷기보다 최대 3배의 칼로리를 소모하고, ‘Zone 2’ 심박수 유산소 훈련에도 최적화돼 있다. 특히 러닝이 부담스러운 무릎 부상자, 과체중, 중장년층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고효율 운동’으로 각광받고 있다.

무거운 무게가 무릎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기 쉽다. 하지만 러닝이 체중의 8배에 달하는 충격을 무릎에 전달하는 반면, 러킹은 보행 자세가 유지돼 무릎 충격이 체중의 2.7배에 그친다. 체중 68㎏ 기준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은 러닝 시 약 544㎏, 러킹 시 약 220㎏인 셈이다.

○미국에선 이미 ‘문화’미국에서는 이미 러킹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전국 각지에서 크루가 운영되고, 매달 수백 건의 러킹 이벤트가 열린다. 지역색·역사·유머가 어우러진 ‘코스튬 러킹’과 ‘추모 러킹’ 같은 행사도 흔하다. 완주자에게는 ‘한정판 패치’가 수여되며, 이를 군용 백팩에 붙이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

장비 시장은 러킹 전문업체 ‘고럭(GoRuck)’가 선도하고 있다. 2008년 특수부대 출신 제이슨 맥카시가 설립한 고럭은 지난해 러킹 백팩 매출이 전년 대비 약 65% 증가했다. 웹사이트 트래픽 역시 44% 상승했다. 고럭을 필두로 미스터리 랜치, 5.11 택티컬 같은 브랜드들이 전용 백팩, 조끼, 웨이트 플레이트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러킹 대회도 열린다. 고럭은 근력, 민첩성, 지구력을 고루 반영하는 특수부대의 평가 방식을 활용한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교관의 인솔 하에 목표에 도전하는 ‘고럭 챌린지는’ 지난 15년간 1만회 이상 개최됐다.

웨어러블과의 연동도 활발하다. 가민 등 웨어러블 기기들은 러킹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전문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러킹이 미국에서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드웨어·콘텐츠·커뮤니티’가 결합된 새로운 운동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러킹이 생소하다. 많은 예비역 남성들에게 러킹은 ‘악몽의 재현’처럼 느껴진다. 운동 인플루언서 ‘어썸블리스’가 유튜브에 업로드한 러킹 소개 영상에는 “이건 그냥 행군이잖아”라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장비 유통도, 러킹 커뮤니티도, 콘텐츠 생태계도 아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문 장비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운동,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확장 가능한 커뮤니티, 웨어러블 연동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트래킹 생태계까지. 러킹은 아직 한국에선 낯설지만, 그 안엔 놀랄 만한 잠재력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래서 더 기회일 수 있다. 부상이 있는 사람들, 비싼 전문 장비 없이 시작 가능한 운동을 찾는 사람들. ‘걷기 이상의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이 시장을 선점할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