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어느 날은 햇볕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대기를 뚫고 살갗 위에 앉고, 어느 날은 비바람이 통곡을 하며 휘몰아친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여름은 움츠러들지 않고, 있는 힘껏 계절의 위용을 자랑한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장난질하는 여름의 한가운데 서서 알베르 카뮈의 책 <결혼·여름>을 읽는다.
청년 시절의 카뮈가 쓴 문장들 속에서 철학 대신 여름의 후끈한 공기와 야생의 향에 푹 빠져본다. 카뮈가 청춘을 “탕진에 가까운, 성급한 삶으로의 돌진”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렇게 청춘을 향해 돌진하고 그렇게 탕진한다. 청춘은 짧기 때문에 화려하다. 꽃은 청춘을 닮아 잠시 인생과 입맞춤하며 태양처럼 빛나고 야생의 향을 피워올린다. 그 모습을 발레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작품 속에서 ‘주테 앙 투르낭(jete en tournant)’ 동작을 볼 때 종종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마치 꽃이 피듯 일순간 움직임과 에너지를 화려하게 폭발시키고 땅으로 내려오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주테 앙 투르낭은 하늘 높이 몸을 띄우면서 회전하되, 솟아오른 정점에서 양쪽 다리를 교차한 후 땅에 착지하는 동작이다. 주테는 양다리를 앞뒤로 길게 스트레칭하며 공중에 몸을 띄우는 동작이고, 투르낭은 회전의 동작을 뜻하며, 이 두 동작을 하나로 합친 것이 주테 앙 투르낭이다.
주테가 인간이 몸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긴 직선이라면, 주테 앙 투르낭은 인간이 몸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원이다. 그래서 이 동작을 하는 무용수의 모습은 꽃이 꽃망울을 열고 활짝 만개하는 모습을 닮았다. 대표적 경우가 ‘라 바야데르’ 2막 솔로르와 감자티 공주의 결혼식 장면이다. 2막은 황금신상과 대형 코끼리가 등장하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디베르티스망으로 유명한데, 황금신상의 춤, 앵무새춤, 북춤 등으로 축하 연회의 흥을 한층 돋운 후에 솔로르와 감자티, 여성 무희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선보이는 주테 앙 투르낭은 이 결혼식이 얼마나 화려하고 성대한지 드러낸다.
‘지젤’에서 알브레히트를 향해서 그랬지만 ‘라 바야데르’에서도 솔로르를 향해 ‘왜 그랬니?’라는 닿지 않는 질문과 원망을 던진다. 그리고 지젤과 니키아의 상황에 대해서는 카뮈가 인간 존재와 세계 사이에서 읽어냈던 불합리하고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문제들을 짚었다. 연인의 약혼녀인 줄 모르고 그녀에게 받은 목걸이를 들고 좋아했던 지젤이 다음 순간 심장병이 도져 죽는 것도, 솔로르가 보낸 꽃바구니인 줄 알고 그걸 들고 기뻐서 춤추다가 바구니 속 뱀에 물려 죽는 니키아의 상황도 어찌나 부조리한지!
카뮈는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은 부조리”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인간’이기를” 원하고, 그 안에서 세계를 이해하려 하고,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고자 했다.
어린 시절, 외가의 뒷마당에는 작은 포도밭이 있었다. 덩굴 사이로 나만 느끼는 어떤 감정이 그 포도알 속에 콕콕 박히는 걸 보면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카뮈의 <결혼·여름>을 읽으며 “내가 찾는 비밀은 올리브나무 골짜기의 포도덩굴 냄새를 풍기는 낡은 집 주변, 차가운 풀과 제비꽃들 밑에 묻혀 있어”라는 문장 사이에서 그 여름 야생의 향을 떠올렸다. 그 ‘비밀’은 각자가 찾아야 할 것이다. 청춘은 뜨겁고, 젊음은 소진되며, 꽃은 지고, 여름은 지나간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마침내,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카뮈의 글처럼, 불현듯 삶의 부조리 속에서도 꿋꿋할 비밀이, 보석이, 여름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