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세 고헤이 "자폐증 형은 문화인류학 이해시켜준 스승이죠"

입력 2025-07-31 17:33
수정 2025-08-01 00:12
“이 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관계에 대한 책일 뿐 아니라 모든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생의 실종> 저자 이노세 고헤이 메이지가쿠인대 교수(사진)는 지난 28일 서울 북촌 김영사 사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해와 소통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월 한국에 책이 출간된 이후 처음 방한한 이노세 교수는 이날 북토크 행사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그의 책 <야생의 실종>은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지적 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형 료타의 ‘싯소’를 겪으며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경계와 그를 뛰어넘는 공존에 대해 고찰한다. 싯소는 일본어에서 ‘실종(失踪)’ 또는 ‘질주(疾走)’를 뜻하는 발음으로, 저자는 중의적으로 히라가나로 적었다. 말없이 집을 나가버리는 형은 경찰과 이웃, 가족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오곤 한다. 이노세 교수는 형의 싯소를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선을 뛰어넘는 질주로 이해한다.

료타는 장애인 시설이 아니라 셰어하우스에서 방문 도우미와 함께 살아간다. 이노세 교수는 “일본에서도 장애인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 집에서 지내거나 시설에 갇혀 생활하는 게 보편적인데 이 경우 사회와 단절되기 쉽다”고 했다. 사회와 연결되려는 노력은 료타와 가족에게 ‘저항’의 성격도 지닌다.

책은 형의 발자취를 좇으며 문화인류학의 다양한 주제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이노세 교수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형은 연구 대상이라기보다는 제게 인류학 이론을 이해시켜준 선생님이었다”며 “여러 인류학 이론을 형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연결’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연결은 <야생의 실종>의 주제이자 성취다. 책이 나온 뒤 NHK에서 이노세 교수 가족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는데, 이 방송을 본 어느 학교 교사가 ‘차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생들과 수업을 한 것. 이노세 교수는 “우연이 겹쳐 비장애인 아이들이 장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책을 쓸 때는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여러 독자와 연결될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