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작부터 말년 교향곡까지…'3樂 3色'으로 만나는 브람스 생애

입력 2025-07-31 16:56
수정 2025-08-01 02:27
클래식 음악계에는 ‘3B’란 말이 있다. ‘독일의 3대 작곡가’로 불리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한데 묶어 쓰는 말이다. 이 중 막내 격인 브람스(1833~1897)는 혹독한 자기 검열을 거친 완벽주의 성향의 작곡가로 유명하다. 한 작품을 쓸 때 길게는 20년 넘게 매달렸을 정도다. 그는 ‘고전적 낭만주의자’라고도 불린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으나 고전주의의 엄격하고 탄탄한 형식을 계승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써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배경 때문에 브람스의 곡은 늘 연주하기 까다로운 음악으로 손꼽힌다. 매 구절 담긴 고뇌를 표현할 수 있는 통찰력과 기술적 완성도를 갖추지 않고선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어서다.

올해 11월은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브람스 연주를 만나볼 기회다.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등 ‘세계 3대 악단’이 내한 공연에서 그의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기 때문이다.

클라우스 메켈레가 이끄는 RCO는 11월 5일 브람스의 초기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1번(키릴 게르스타인 협연)을 들려준다. 피아노가 고도의 기교를 내세우면서도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물러서지 않고 대등하게 맞서는 ‘교향악적 협주곡’의 시작점이 되는 작품이다. 브람스가 20대 때 내놓은 첫 관현악곡인 만큼 1, 3악장에선 젊은 날의 맹렬한 악상을 주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브람스가 평생의 스승으로 여긴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완성한 협주곡이기 때문에 2악장에선 대조적으로 그를 기리는 듯한 사색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키릴 페트렌코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은 11월 7일과 9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22세 때 작곡에 착수한 브람스가 43세가 되던 해인 1876년에야 세상에 내놓은 첫 교향곡이다. 브람스가 21년의 세월을 들인 이 작품엔 ‘베토벤 10번 교향곡’이란 별칭이 붙는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격찬한 일화에서 비롯됐다.

베토벤이 남긴 위대한 9개 교향곡을 이을 만한 걸작이란 의미가 있지만 일각에선 베토벤의 영향이 너무나 짙어 브람스의 개성이 일부 가려진 작품으로 평하기도 한다. 실제로 1악장에선 베토벤 ‘운명 교향곡’ 주제를, 4악장에선 ‘합창 교향곡’ 주제를 떠올릴 수 있다.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의 빈 필하모닉은 11월 19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려준다. 브람스가 말년에 남긴 마지막 교향곡이다. 베토벤을 두고 ‘쫓아오는 거인’이라고 표현한 브람스가 그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 색깔과 음악 문법을 전면에 드러낸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보통 베토벤의 교향곡은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는 형식을 취하는데, 브람스의 다른 단조 교향곡과 달리 4번은 피날레에서 장조로 넘어가지 않고 어둠 속에서 침잠하는 감정을 깊이 파고들며 비극적 결말에 도달한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