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알고 투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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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스테이블코인 이슈, 코인이 아니라 체인을 보자스테이블코인 이슈는 여전히 뜨겁다. 학계, 산업, 입법과 행정 각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스테이블코인이 무엇인지, 누가 발행해야 하는지 등의 기초적인 질문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하는 동안 미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상원과 하원에서 통과시키고 대통령 서명까지 이뤄지면서 정식 법률이 됐다. 이에 따라 대형 은행은 물론, 아마존, 월마트 같은 주요 유통기업들도 앞다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공식화했다. 기존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은 폭증하고 있고, 이제 곧 대형 기관과 업체들이 발행한 새로운 달러 스테이블코인들이 시장에 넘쳐날 것이다.
한국에서 관련 논의가 더딘 이유는 ‘코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코인은 아무나 무분별하게 발행해 큰돈을 버는 수단이고,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며, 자금세탁 등 불법행위에 쓰일 거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ICO 광풍과 그해 말 정부의 강경 메시지가 이런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실상은 다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고정돼 있어 매매로 이득을 볼 수 없고, 발행량과 동량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담보로 유지해야 하는 구조가 국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발행 시 이익(시뇨리지)도 거의 없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 경우 담보자산에서 나오는 수익 역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들에 비해 크지 않다. 범죄에 악용된다는 비판도 실제로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자금세탁에는 코인보다 현금이 몇백 배 많이 사용되며, 블록체인은 모든 전송 기록이 영구히 남아 삭제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현금보다 추적이 오히려 쉽다.
오랫동안 이런 사실을 설명해왔지만, 논의 진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코인’이 아니라 ‘체인’에 주목하자.
블록체인은 흔히 ‘분산 원장(ledger)’이라 부른다. 본질적으로 ‘장부’라는 의미다. 예전에는 종이에, 컴퓨터 시대에는 스프레드시트나 데이터베이스에 적었던 거래 기록을 중앙 주체 없이 다수의 컴퓨터(노드)에 분산시켜 기록하는 장부가 블록체인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합법화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코인을 법 테두리 안의 재화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이 본질이다. 기존에는 은행이나 카드사의 데이터베이스 기록만 신뢰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블록체인상의 기록도 신뢰의 범위로 인정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관점은 논의를 전진시킨다. ‘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것인가’에만 머물지 않고, ‘어떤 조건의 블록체인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행해야 금융당국과 은행 등이 신뢰할 수 있을까’로 논의를 발전시킨다. 모든 통제를 가진 허가형(permissioned) 블록체인으로만 할지, 아니면 시장성과 확장성을 추구해 이더리움 같은 퍼블릭(public) 체인에 만들면서 새로운 자금세탁방지, 자본통제 방식도 고민할지 등 구체적 논의도 가능해진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이 코인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이 깊을 것이다. 카드나 페이 서비스가 잘 갖춰진 국내 지급결제 시장에서 코인을 발행하는 것만으로는 큰 경쟁력이 없다.
앞선 예와 마찬가지로 코인이 아니라 체인을 보자.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블록체인상에 원화 표시(KRW-denominated) 자산으로서의 존재다. 이 자산의 수요는 먼저 블록체인 경제 안에서 발생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테더(USDT)와 유에스디코인(USDC) 역시 온체인 수요 덕분에 성장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체인에 어떤 시장, 어떤 수요가 있는지를 탐구하고, 그에 따라 어떤 역할을 할지를 찾아내야 생존 전략이 보인다. 일상생활 결제 등 ‘코인’의 용도를 먼저 찾으려 하기보다, 블록체인상의 생태계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이 발상 전환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보편화된 미국에서는 금융당국과 기관이 ‘기관용 디파이(Institutional DeFi)’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테이블코인 등장으로 블록체인상에 달러가 들어왔고, 주식, 채권, 보험, 금 같은 자산의 ‘토큰화’도 가까운 미래가 되면서 이런 자산들이 거래되는 디파이 생태계와 금융기관의 법적 의무 사이의 접점을 어떻게 찾을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누가 기관용 디파이를 할 것이냐’가 아니라 ‘기관용 디파이는 어떤 블록체인에서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증권예탁기관(DTCC)이 기관용 디파이 수요에 맞춰 출시한 Composer X라는 플랫폼상에서는 디지털자산의 발행, 유통, 관리, 보고까지 지원하며, 기관은 이를 사용해 자금세탁방지 등 규제를 준수할 수 있다. JP모간은 베이스(BASE) 기반 허가형 예금토큰 JPMD를 선보였다. 최근 통과된 스테이블코인 법과 앞으로의 기관용 디파이 규제 모두를 미리 충족시키려 퍼블릭 체인에 허가형 토큰을 도입한 셈이다.
스테이블코인 다음에는 디파이가 온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마련하자 글로벌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으며, 이 스테이블코인들이 다양한 디파이 생태계에 진입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디파이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기관용 디파이 서비스들도 속속 등장하면서, 전 세계 경제 역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디파이의 영향권에 진입할 것이다. 7월 30일 자 백악관의 ‘크립토 리포트’에도 디파이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냐, 아니냐’, ‘발행자 조건은 자본금이 얼마냐’ 등을 아직도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국 주요 은행들이 쉽고 편리하며 신뢰할 수 있는 디파이 서비스를 출시하고 5% 이상의 예치 이자를 약속한다면, 한국은 대항할 수 있을까? 이제는 스테이블코인과 디파이를 등에 업은 달러의 ‘침공’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