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둥지를 튼 유럽 기업들이 우리 정부와 국회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재검토를 요구한 건 이 법안이 시행되면 한국에서 사업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란봉투법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사업 리스크가 너무 커지는 만큼 한국 철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28일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내고 “모호하고 확대된 사용자 정의는 기업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CCK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럽계 기업을 대변하기 위해 2012년 설립된 기관으로 현재 400여 개 회원사를 대표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AB인베브, 루프트한자, 이케아, 로레알 등 유럽 대기업들이 소속돼 있다. ECCK가 개별 법안에 즉각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ECCK는 “외국인 투자기업(외투기업)은 노동 관련 규제로 인한 법적 리스크에 민감하다”고 했다. 교섭 상대 노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하면 외국 기업이 더 이상 한국에서 활동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안 그래도 유연성이 떨어지는 한국 노동시장이 더욱 경직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전날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외투기업 64%는 노동 규제 등을 들어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고 답했다. ECCK는 또 “노조법 개정안 2조는 현재와 미래 세대의 고용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국 기업뿐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도 이 법안이 시장경제를 훼손하고 국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제조 기업은 2, 3차 하청업체가 따라붙는 구조다. 그런 만큼 사용자 범위가 확대되면 원청 사업주는 수십, 수백 개 협력업체와도 단체교섭을 해야 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기업 투자와 사업장 이전 등 경영 판단까지 쟁의행위 대상으로 간주할 경우 급격히 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처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