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가 손실 떠안고 투자 유도…'K엔비디아' 키운다

입력 2025-07-28 18:00
수정 2025-08-05 15:57

정부가 ‘국민성장펀드’ 규모를 당초 100조원에서 150조원 이상으로 키우려는 것은 첨단 산업 경쟁이 국가 간 패권 경쟁 양상으로 확전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를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국정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재원으로 사용하면서 투자 이익의 과실은 일반 국민, 연기금, 민간 기업 등과 공유하는 구조로 펀드를 설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관제(官製) 펀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쉽지 않고 정권이 바뀌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정부·금융회사 손실 분담28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는 산업은행에 설치될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과 100조원 이상 규모의 민간 투자금 등 총 150조원 이상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민간 자금은 시중은행, 대형 증권사, 연기금, 민간기업, 일반 국민 등으로부터 조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모(母)펀드인 첨단전략산업기금이 투자 목적과 기간에 맞춰 설립되는 여러 개의 자(子)펀드에 후순위 자금으로 출자하는 구조를 유력하게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자펀드의 투자 실패로 발생할 수 있는 펀드 손실의 10%를 정부가 먼저 부담할 경우 민간 투자를 끌어올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자펀드는 첨단산업, 혁신기술기업, 에너지·인프라 등 분야의 중소·중견·대기업에 지분 투자하거나, 국고채 금리 수준의 초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첨단산업에 투자하는 자펀드는 △기술 자산(특허·알고리즘 등 무형자산) △기술 인프라 △벤처기업 및 딥테크 투자 △스케일업(스타트업 성장 지원) 등 투자 전략별로 세분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유망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장기 투자를 통해 한국판 TSMC와 엔비디아 등 ‘빅테크’를 키워낸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 투자 수익 분리과세 검토벤처, 스케일업 펀드 등에 대해선 은행, 증권사와 같은 민간 금융사들이 정부에 이은 후순위 투자자로 전체 펀드의 10%가량을 출자하는 방식도 다뤄지고 있다. 민간 금융사 입장에선 손실 가능성이 더 높지만 성공할 경우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일반 국민의 투자 손실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금융회사가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달라”고 한 발언과도 궤를 같이한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의 투자 수익에 대해 저율로 분리과세를 하는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싱가포르의 국민 펀드인 테마섹 수익으로 국민과 기업들은 2024년 기준 17.8%의 세 부담 경감 효과를 누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가 부동산 시장 등 비생산적인 분야에 고여 있는 시중 자금을 첨단전략산업으로 흘러가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세계 각국이 AI 등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 국내 벤처와 스타트업 업계는 자금이 말라붙고 있다”며 “첨단 산업 지원 효과가 큰 분야에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관제 펀드’ 극복할 수 있을까금융권 일각에선 과거 관제 펀드 실패를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과거 정부가 주도했던 녹색성장펀드(이명박 정부), 통일펀드(박근혜 정부), 뉴딜펀드(문재인 정부) 등은 대부분 성과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민간 영역에서 100조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문재인 정부 당시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를 테마로 만들어진 뉴딜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는 정권이 바뀌자 펀드명과 운용 전략이 모두 바뀌었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펀드는 설립 목적과 취지대로 유망한 기업에 장기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영효/최형창/하지은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