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둘이 함께 누워 있던 밤에, 규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카일리가 있음에도 그때 왜 선뜻 나와 사귀기로 했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아서 계속 입 안에 물을 머금듯이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 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새벽 서울의 불야성, 이태원 클럽을 휘젓는 현란한 춤사위들. 네온사인이 밤거리를 물들이듯 사이키 조명 아래 어둠을 밝히는 청춘들의 거침없는 몸짓. 때론 독주에 시들고 어느 날엔 연애에 미치고…. ‘남미새’에서 ‘쿨가이’로, 사랑과 인생을 배워가는 그 남자의 이야기가 15만 부를 돌파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한 도발적 서사, 박상영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이 그 주인공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시대 소설 문단에서 ‘퀴어 장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독자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2019년 출간된 이래 신동엽문학상 수상 및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국제 더블린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후보작 지명 등 국내외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동명의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대중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출판사 창비는 지난 5월 15만 부 기념 한정판 양장본을 출간했고, 작가 박상영은 최근 국내 북토크에 이어 스웨덴 스톡홀름과 미국 뉴욕까지 초청돼 해외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제 갓 등단 10년 차가 된 젊은 작가, 박상영의 소설들은 어떻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K문학’의 새로운 줄기로 뻗어나갈 수 있었을까. 퀴어라는 소재주의에 국한되지 않고, 왕성한 필력과 감각적 문체로 ‘요즘 세대’의 목소리와 자화상을 대변해온 박상영의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게이 배우’ 캐스팅에만 3년…방영 반대 시위까지
박상영의 출세작 <대도시의 사랑법>은 지난해 10월 영화·드라마가 동시에 선보이면서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원작에 대한 평단의 찬사와 달리, 2차 콘텐츠로 생산되기까지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영화의 경우 게이 주인공 흥수(노상현)와 자유분방한 여사친 재희(김고은)의 끈끈한 우정을 조명했는데, 흥수 배역을 캐스팅하는 데만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장르의 특수성 때문에 배우 매니지먼트에서 제안을 물리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드라마 또한 남자 배역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겨우 확정된 배우가 촬영을 2주 앞두고 거절하는 일까지 있었단다. 일부 시민단체가 드라마 방영 반대 시위에 나서고 출연진이 메시지 공격을 받는 등, 사회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우여곡절이 깊었다.
이 모든 논란에도 <대도시의 사랑법>이 텍스트와 영상물로 대중과 긴밀히 호흡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정치한 작품성 덕분이었다. 파격적 소재, 경쾌한 문체, 다층적 서사, 성찰적 주제는 단순히 성소수자의 연애담을 넘어 우리 시대 청춘들의 일상생활 고민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비속어의 시의적절한 투척, 시시콜콜한 생활상 묘사, 흐름의 반전을 노리는 유머러스한 문장 등 ‘특징적 필치’는 젊은 독자들을 포획하는 박상영만의 무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감정선을 건드리는 진지한 내면 고백은 작품 전반에 걸쳐 ‘웃음 속의 눈물주의보’를 일으키게 한다.
“혈액검사를 마친 후, 처음으로 군의관이 내게 했던 말. ‘너 바텀이냐 탑이냐.’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고 보니 개만도 못한 공무원 새끼가 나 군대 가기 무섭게 그렇게 남자를 만나고 다녔다고 하더군. 그 후로 급속도로, 정말이지 일사천리로 나는 사회로 반환되었고, 내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먼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했지. 독창적 별명 짓기.
카일리 미노그를 듣다 꼬여버린 인생이라 카일리라고 지은 건 아니고, 그냥 이름이 예뻐서. 어차피 이것이랑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판인데 나 듣기에 제일 예쁜 이름을 붙여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카일리.
맞아. 마돈나나 아리아나, 브리트니나 비욘세보단 카일리지. 아무렴.
그 이름을 후회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대도시의 사랑법>은 4개의 단편(재희,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이 이어진 연작소설로, 화자이자 게이 주인공 ‘영’을 중심으로 연애담과 가족사, 인간관계, 성 정체성 갈등, 현실의 곤궁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풀어내고 있다. 표제작에서 ‘영’은 이태원 클럽에서 만난 ‘규호’와 동거하며 가까워지지만, 그를 사랑할수록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식하고 고뇌한다. 에이즈에 카일리라는 별칭을 지어주고, 연인에게 이별 여행을 선사하며 돌아서는 화자의 대범한 여유에는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이 숨어있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괜찮지 않은 마음을 괜찮은 척으로 무마’한 채, 다시 내일을 살아내야만 하는 청년들의 가슴앓이를 상징한다. 박상영식 위로가 우리 시대에 가닿는 이유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를 윤리적 시혜의 대상으로만 가까스로 재현하거나, 진중한 저항 운동의 필요성을 환기하던 비극적이고 비장한 재현 관습에서 벗어나 있다. 혐오와 더불어 살면서도 굴하지 않고 웃고 울고 헤어지고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우리 시대 퀴어 청년의 목소리로 전하는 일상 이야기다.”
-김건형 문학평론가, KBS 기획 ‘우리 시대의 소설’ 비평
2천만 원 빚지고 등단 도전…“새벽 5시부터 글 썼다”
박상영은 1988년 대구 수성구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 그는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인싸’였지만 한편으론 정서 불안을 앓던 학생이기도 했다. 잠을 청하려 방에 누우면 천장이 내려와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시달리고, 스무 살 무렵에는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상담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했다. 그런 그의 내면을 치유한 건 문학이었다.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신경숙의 <외딴 방>을 시작으로 은희경·김연수·황석영 등 중견 소설가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수시 원서 수백 건을 접수하며 입시 전쟁을 치를 때도, 손에서 소설을 놓지 않았다. 실제 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3년간 진로 희망이 ‘작가’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성균관대 불문과에 입학한 박상영은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했다. 교지 편집부 기자로 활동하고 한때 드라마 PD를 꿈꾸기도 했다. 언론인이라는 포부를 안고 잡지사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박봉에다 특유의 도제식 문화는 그의 내면을 괴롭혔다. 이후 광고 기획자, 일반 사무직, 컨설턴트까지 여러 직업을 거쳤지만 자아 실현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었다. ‘직장 생활을 통해 인생에서 더 나아질 것은 없다’고 판단한 박상영은 동국대 문창대학원에 과감히 진학, 본격적인 ‘작가 수업’에 돌입한다. 2년간 무수한 공모전 낙방 끝에 마침내 2016년 국내 대표 문예지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의 꿈을 이루게 된다.
당시 신인상 상금은 1000만 원. 그는 상금 전부를 어머니께 드렸다. 어금니가 없어 갈비탕 고기를 아들에게 내어주시는 어머니의 임플란트 이식을 위해. 박상영의 집안은 IMF 이후 가세가 기울었고 어머니는 돈을 아끼며 살림을 억척스레 다잡았지만, 아들이 읽고 싶은 책만큼은 풍족하게 사주었다고 한다. 박상영은 어머니와 애증의 관계라고 종종 털어놓지만,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 어머니가 물심양면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그토록 소망했던 작가의 길이었지만, 박상영의 생활은 여전히 팍팍했다. 데뷔하기까지 불어난 빚만 2000만 원에 달했고 원고료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웠다. 그는 결국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출간하기까지 집필과 생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카페에서 글을 쓰다 9시까지 출근하는 식이었다. 2019년 첫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특히 중편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게 된 후에야 그는 비로소 전업 작가로 독립할 수 있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주인공과 말기 암 투병 중인 엄마, 연상의 동성 애인과의 긴장 관계를 통해 성 정체성에 대한 선입견 문제를 진솔하게 고찰한 작품이다. 한 논문에 따르면, 실제 퀴어 성향의 독자들은 <대도시의 사랑법> 수록작 중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 가장 큰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상영은 이후 10대들의 사랑과 배신을 다룬 성장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코로나 팬데믹 당시 소수자들이 겪은 차별과 배제를 문제시한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게 된다. 다이어트와 사회생활의 비애를 쾌활하게 빚어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일과 여행 그리고 휴식의 고차방정식을 풀어낸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등 에세이집 역시 흡입력 있는 구성과 유머러스한 말맛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뼈 있는 농담, 사회적 편견의 정곡을 찌르다
“‘살 빼시고 관리 좀 하시면 인기 많으실 거 같은데요? 대리님 긁지 않은 복권 같아요!’
A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점심을 먹으러 나가버렸고 남겨진 나는 여러모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가 뭔데 내 외모를 평가해. 살찐 사람 몸은 함부로 이래라저래라해도 되는 건가. 게다가 긁지 않은 복권이라니. 상대방은 누구보다도 절실히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중인데 타인이 왜 함부로 그 사람을 무엇이 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인가. 물론 나도 그가 별다른 악의 없이, 오히려 칭찬에 가까운 의미로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근데 그게 더 문제라고. 나이 지긋한 부장님이면 모를까 나름의 인권 감수성 교육을 받고 자랐을 세대가 타인의 몸에 대해 논하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라는 것을, 이런 종류의 말이 실례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박상영 에세이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중
팬들 사이에서 박상영은 거침없는 필력만큼이나 ‘말 잘하는 작가’로 통한다. 스스로도 ‘노잼’ 스타일이 많은 문단에서 ‘웃기는 편’이라고 자부할 정도다. 실제 그의 강연, 북토크, 인터뷰 등을 살펴보면 화법이 유려하면서도 날이 서 있지 않아 듣는 이를 편하게 하고,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풀어내는 입담은 청중을 매료시켰다. 타자를 의식함으로써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고 마찰을 줄여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분투하는 사회생활 속에서 박상영이 터득해온 생존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농담 어린 얘기들은 그저 흘러가는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적 요소들이 있다. 타자의 입을 빌려서든, 작중 화자의 고백록이든 그의 농담에는 ‘뼈’가 있다. 직업 윤리, 성 정체성, 몸의 사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인권적 화두들을 다시금 곱씹어보게 만든다. 혐오의 정곡을 찌르고 차별의 뼈를 때림으로써, 우리 사회로 쏟아지는 편견의 세례를 요격해내는 박상영식 농담은 그래서 위력적이다. 집필에 집중할 땐 단편 청탁을 중편 원고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저돌적 내공을 발휘한다는, ‘박상영 문학’의 저력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마이클.’
마이클은 미국인처럼 ― 시간에 딱 맞춰 출퇴근을 하며 높은 직급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고분고분하지 않은 태도로 ― 회사에 다닌다는 의미에서 최 차장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다. 누가 봐도 비난의 의도가 명징한 멸칭이지만, 뭐, 그들이 나를 뭐로 부르든 상관없다. 마이클이 아니라 마이클 할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한들 나로서는 알 바 아니다. 다만, 별명을 붙일 정도로 나를 친근한 사람으로 인식해 자신들의 사교 활동에 동참하기를 슬쩍 강요할까 봐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중이다.”
-박상영 에세이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중
성현아 문학평론가는 <이차원의 사랑법: 박상영론>에서 “자신들의 실존도 승인할 것을 요구했던 이전 세대의 작가들과 달리 청년 세대와 그들이 열광하는 작가 박상영은 제도의 승인에 연연하지 않는다. 규범적 사회로의 편입에 번번이 실패하여 경험적으로 무기력해진 측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의 변화이기도 하다”며 “기존의 관념에 반기를 들기 위해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와 반발을 문학의 동력으로 삼지 않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이들이 사회 혹은 자기 자신과 응전하는 방식은 ‘냉소적 허용’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당신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가로등 불빛과 네온사인 간판이 원래 이렇게도 찬란했었나. 갑자기 왜 이렇게 서울이 아름답지.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들이 특별하고 대단하게만 느껴지지. 할증 시간이 끝났지만, 택시비는 만원이 넘었어. 교통카드 잔액이 2만원도 안 남은 거 같은데. 이따 집에는 어떻게 가.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한남동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한 차. 나는 제일기획 앞에서 택시를 내려버렸고, G클럽 앞까지 달려갔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있는데 클럽 입구로 그가 나왔다. 자기 몸만큼 커다란 종량제 봉투를 들고 있는 그.”
-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대도시 속 이태원으로 상징되는 청춘들의 해방구는 문학 비평적 차원에서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로 해석된다. 헤테로토피아는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주창한 공간 개념으로, 이상향인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현실의 일부분이지만 비일상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낯설고 저항적인 공간이다. 푸코의 저작 <권력과 공간>(문학과지성사, 2023)을 번역한 이상길 연세대 교수는 책에서 “헤테로토피아는 특정한 시대의 문화에 내재하는 경계/한계를 폭로하고 문제시한다. 기존의 제도화된 공간들 속에 위계를 교란하고 권력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공간”이라며 “존재 자체가 발휘하는 이의제기의 기능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자유의 실천을 자극할 수 있다”고 논한 바 있다.
“저에게 도시는 또한 아주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자, 사랑을 찾기 쉬운 곳이에요. 동시에 한없이 외로워지기 쉬운 공간이기도 한데요. 모두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뭔가 마이너리티적 요소를 삶에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는 익명으로 숨어버릴 수 있는 공간이자 한없이 나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익명성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나’의 존재도 있고요.”
-2019년 8월 1일 자 채널예스 ‘박상영, 페이지터너가 되고 싶다’ 인터뷰 중
박상영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도 헤테로토피아를 간직하는지. 일신의 도피처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하고 생의 존재 증명을 완성하는 그곳. 방어기제로 연명하는 ‘갓생’의 자학적 굴레에서 벗어나, 본인의 참모습대로 살아가는 ‘찐생’을 추구할 때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곳. 동성애, 과체중, 사회부적응이라는 편견 어린 낙인에 맞서가며, 밤이면 단식과 야식 사이에서 외로이 고민하는 찐생의 일상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현대인 모두의 초상일 것이다.
박상영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조차 허황한 유토피아나 자기 파멸적인 디스토피아가 아닌, 자기 생을 더욱 충만하게 해주는 현실 속의 헤테로토피아를 축조했다. 사소하고 허름한 우리네 초상일지라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주문이 그의 행간에 스며있다. 그 역시 설레는 여행과 온전한 휴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휴가지에서도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글을 쓰는, 제대로 쉴 줄 모르는 허당 남자이지만. 그래서 ‘박상영식 사랑법’은 더욱 인간적인 느낌일 테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원하는 꿈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꿈이 이뤄지고 나서도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아지고, 우리는 희망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저라는 사람이에요. 근원적인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것,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 제힘으로 일상이 충만할 수 있도록 행복해지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2022년 <성대신문> 1702호, ‘박상영 인터뷰’ 중
청춘이라는 촛불 하나 마음에 켜고 나만의 이태원, 헤테로토피아를 찾아 오늘도 대도시의 새벽 택시는 달리고 또 달린다. ‘나는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박상영 문학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르떼 살롱 '아티스트 토크쇼' : 박상영 작가] 신청하기
신승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