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비올리스트" 한국인 최초 베를린필 종신 단원 박경민

입력 2025-07-29 08:02
수정 2025-07-29 21:48




“한국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 베를린필하모닉의 종신 단원, 비올리스트 박경민(35)을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숨 가쁜 일정을 마치고, 이틀 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박경민의 이번 내한 일정은 대부분 거장 정명훈과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지난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과 비르투오지' 공연과 부산 콘서트홀 개관 시즌 연주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부산 콘서트홀 개관 시즌 연주에서 처음 정 감독님과 함께 연주했어요. 리허설에서 디테일을 추구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음악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렇다면, 입단 6년 차를 맞은 비올리스트 박경민은 세계 최고 악단인 베를린필하모닉에서 어떤 경험을 쌓고 있을까. 현재 베를린필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기도 한 박경민에게 직접 베를린필하모닉에서의 삶과 음악에 해 물었다.



세계 최고의 직장, 최고의 동료들

“환상적인 직장이에요” 박경민은 직장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짧은 대답을 남겼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라면 한 번쯤은 동경하는 무대, 베를린필하모닉. 박경민은 2019년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의 종신 단원이 됐다. “연주 중엔 수석 단원들의 솔로에 빠져들 때가 많아요, 세계적인 무대에서 독주자로도 인정받는 여러 동료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감동이에요”

특히 최근 호른 수석이 된 중국인 호르니스트 윤쟁에 대해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는 살면서 그런 캐릭터는 처음 봤어요, 무대에선 카리스마가 폭발할 만큼 프로 중의 프로인데, 사람은 그렇게 밝고 겸손할 수 없어요.”

일본인 악장 다이신 카지모토와도 특별한 동료애를 전했다. “다이신은 ‘프로패셔널’ 그 자체에요. 코로나 이전부터 듀오 공연을 하자는 대화를 자주 나누는데, 언젠가 한국에서 함께 막스 브루흐가 클라리넷과 비올라를 위해 쓴 더블 콘체르토를 하고 싶어요. 제가 비올라, 다이신이 클라리넷 파트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로 했죠.”

보기 드문 예술가, 키릴 페트렌코

박경민은 베를린필하모닉 예술감독 키릴 페트렌코에 대해서도 깊은 존경을 드러냈다.
"페트렌코는 사람 만나는 걸 꺼려요. 인터뷰도 안 하시고요. 오로지 음악에 몰두하는 분이에요. 요즘 시대엔 보기 드문 사람이죠.” 하지만 페트렌코와 함께하는 리허설에 대해 박경민은 ‘철저함’으로 소개했다.
“이렇게까지 집요한 사람은 처음이에요. 자신이 원하는 음색이 나올 때까지 한 소절을 수십 번 반복합니다.” 그가 꼽은 잊지 못할 무대는 페트렌코가 지휘한 슈미트의 교향곡 4번이었다. “작품도 어려웠고, 감정적으로도 깊었어요. 그런데 페트렌코가 리허설을 너무 혼신을 다해 이끌어서, 저와 단원들 혼신을 다해 몰입할 수 있었어요.”

슈미트의 교향곡 4번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이 서린 작품이다. 음악 속에 종교적인 감정과 철학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박경민은 “베를린필 단원들은 자존심이 센 것으로 유명하지만, 좋은 음악을 향한 열망은 지휘자와 완벽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비올라가 선물한 인연

박경민이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 음대 재학 중이던 시절, 선배 바이올리니스트 김사라에게 악기를 골라준 일화는 유명하다. “사라 언니가 학교 악기실에서 악기를 골라달라는 부탁에 제가 비올라 한 대를 추천했어요.” 이 일을 계기로, 김사라는 바이올린에서 비올라로 전공을 바꿨고, 현재 독일 브레멘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일은 뜻밖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이때 박경민이 비올라를 골라준 김사라 교수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비올라 한 대'에서 시작됐다.
박경민의 남편은 이탈리아 팔레르모 출신의 바순 연주자 리카르도 테르조다. 그는 현재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 바수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렇다면 남편을 소개한 김사라 교수에게 당시 어떤 기준으로 악기를 골라줬냐는 질문에 그는 “비올라는 풍부한 음량이 가장 중요하고, 연주하는 사람 손에 착 감기는 감각도 중요해요.”라고 답했다.

박경민은 현재 1690년대 오스트리아 퓌센에서 제작된 고악기를 사용 중이다. 오래될수록 값이 비싼 고악기에 가격을 묻자 “약간의 파손을 거쳐 수리된 악기를 비싸지 않게 샀어요.”라는 겸손한 말을 전했지만, 그가 연주하는 악기의 진가는 무대에서 깊은 울림과 풍부한 배음으로 진가를 증명한다.

자신을 ‘한식을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이라 소개한 박경민은 유럽 생활 20년이 넘은 음악가다. 현재는 연주자인 남편과 함께 가정을 이루었고, 2024년에는 아들을 낳아 엄마가 됐다. 그는 지금도 육아와 연주를 병행하며, 음악과 삶의 균형을 조화롭게 이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악기를 만나 비올리스트가 되기까지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더니 바이올린 선생님이 비올라를 권했어요. 제가 보는 앞에서 선생님께서 바이올린 악기에 비올라 줄(현)을 끼운 세상에 하나뿐인 악기로 레슨을 해주셨어요.” 비올리스트 박경민의 음악 인생은 초등학교 4학년, 만 10세에 시작됐다. 소리가 예민한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에 비올라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한 스승(고 조성구) 덕분에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비올리스트가 됐다.

12세에 예원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그는 유년 시절을 소위 ‘빡센 생활’이었다고 회상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정식 중학교와 숙제, 레슨, 연습, 어학까지 병행하느라 빈 필 공연도 자주 못 봤어요”라며 “그 영향으로 빈 필하모닉 단원은 꿈도 못 꾸고 베를린필 단원이 됐다는 웃픈 고백”을 덧붙였다.

박경민의 빈 유학 시절을 지켜본 전 빈 감리교회 최영식 목사는 그를 “이것저것 재지 않는 과감한 음악가”로 기억했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이 인접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선교 여행 중, 한 카페에서 박경민에게 연주를 부탁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비올라를 꺼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한 노신사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모든 음료값을 계산하고 떠났어요."






철저함이 모여 완벽주의가 된 베를린필

마지막으로 그에게 베를린필하모닉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모두가 자신이 맡은 파트를 완벽히 준비해 와요. 동료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죠.” 독일 특유의 철저한 책임감, 그리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모여 ‘베를린필 사운드’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오는 11월, 박경민은 베를린필 단원으로 다시 한국을 찾는다. “키릴 페트렌코와 함께하는 내한 공연에서는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브람스, 바그너까지 정말 방대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음악가가 되겠다는 동료들과 함께 만드는 무대에 많은 분이 공연장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