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은 불교와 인연이 깊은 정치인이다. 그는 강원도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에서 처음 배지를 달았다. 오대산 월정사가 그곳에 있다. 이 전 총장은 힘든 일을 겪으면 월정사를 찾아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그런 그가 천주교로 눈길을 돌렸다. 역대 교황의 지혜와 메시지를 엮어 책으로 냈다. 지난 25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전 총장은 “종교를 초월해 교황의 말씀을 들어보니 지친 국민들께 희망과 연대 그리고 믿음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누구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 현실 바꾸는 힘을 가져"이 전 총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면서 교황과 천주교를 연구했다. 교황 방북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바티칸 신부들을 보며 받은 감동을 기록해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교황의 언어>다.
책은 역대 교황의 말에 담긴 메시지를 최근 시각에서 주제별로 정리했다. 경제·노동·봉사 등 12개 장으로 구성된 1부는 삶과 사회를 이루는 본질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역대 교황들이 한 말을 소개했다. 6개 장으로 구성된 2부에서는 261대 교황 성 요한 23세부터 최근 선종한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에 이르기까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6명의 교황이 사목 표어로 삼은 메시지를 담았다. 이 전 총장은 “교황의 말은 누구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바꾸는 힘을 지녔다”며 “교황 곁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모로 있어서인지 버릴 문장이 없었다”고 소개했다.
주제별로 말씀을 모으고 생각을 첨언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신부·수녀들과 함께 작업하고,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정식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한 과정을 거쳤다. 정치인에게는 문제를 해결하는 언어 필요정치는 말로 세상을 바꾼다. 그런데 정치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자극적인 언어가 득세한다. 분열과 혼란의 시대에 <교황의 언어>는 갈등보다 연대를, 단절보다 이해를, 무관심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언어를 추구한다. 이 전 총장은 “상대를 미워하는 언어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언어가 정치인에게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참여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강원지사, 3선 의원, 국회 사무총장 등 행정과 입법 영역의 중책을 두루 지냈다.
최근에는 명함에 패러다임 디자이너라는 새 직함을 달았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인간화의 시대가 왔다”며 “인공지능(AI), 기후위기, 100세 수명, 미·중 기술패권 경쟁 등의 강을 건너려면 과거에 한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 초반부터 통상 문제 해결 등 현안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이 전 총장은 중장기 비전 수립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동안 2045년까지의 국가 중기 계획을 수립했으면 한다”며 “해방 100년이 되는 그때 경제로 일본을 앞서야 하지 않겠나. 그러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통받는 운명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재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대학도시' 필요"이 전 총장이 가장 중점적으로 제시한 전략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다. 그는 전국 국립대를 전공별로 특화해 혁신 도시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전남대에는 한국전력·한전공대와의 연계를 통해 전기과를 톡화시키는 에너지 중심으로, LH가 있는 진주 경상대는 국토개발·건축 중심으로, 의료도시 원주와 가까운 강원대에는 의료데이터 관련 전공을 육성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병역특례와 연구소 유치를 병행해 젊은 인재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대학 중심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 총장은 “판교가 40만평으로 200조원 가치를 만들어냈다면, 인천 남동공단 같은 280만평 규모 산업단지를 판교처럼 리디자인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산업단지공단과 LH의 개발권한 통합이 필요하고, 산단 내 주거 및 교육시설 입지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또, 대학 내 기업 입주 허용 등 과감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복지전략도 제시했다. 이 전 총장은 ‘국가연금제’를 새롭게 설계하자고 했다. 출생 시 국가가 1억 원을 펀드에 넣고, 한국투자공사(KIC)나 연기금처럼 7% 수익률로 운용해 20세에 3억6000만 원, 65세에 60억 원 규모의 자산을 형성하는 구조다. 이 전 총장은 “청년에게는 도전 자본을, 노년에게는 삶의 안정 기반을 주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 출범했기 때문에 국민적 설득력을 갖고 구조적 전환을 이끌 기회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