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뢰의 디지털 인프라, 블록체인 윤리가 답이다

입력 2025-07-25 17:30
수정 2025-08-11 10:37
웹3 시대를 여는 한국의 새로운 도전
최근 ‘한국웹3블록체인협회(KWBA, Korea Web3 Blockchain Association)’의 공식 출범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단순한 업계 단체 설립을 넘어, 이는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인 블록체인 기술에 ‘윤리’라는 기준을 부여하려는 전략적 선언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윤리는 왜 필요한가, 그리고 한국은 이 변화의 흐름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블록체인 윤리, 독립된 기술윤리로 부상

최근 학계에서는 블록체인 윤리를 인공지능 윤리와 병렬된 독립적 연구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국제 연구 플랫폼 리서치게이트(ResearchGate)에 발표된 논문 '블록체인의 윤리: 기술, 응용, 영향, 그리고 연구 방향에 대한 프레임워크(Ethics of Blockchain: A Framework of Technology, Applications, Impacts, and Research Directions)'는 블록체인의 윤리적 쟁점을 기술, 애플리케이션, 사회적 영향, 미래 연구 방향이라는 네 축으로 체계화한 대표 연구다. 이 논문은 국제학술지 '정보기술과 사람(Information Technology & People)'에 게재되었으며, 기술윤리와 응용윤리를 종합적으로 포괄하는 프레임워크 성격을 띤다.

이 연구는 블록체인 기술의 윤리적 쟁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접근성을 포함한 다양한 윤리적 고려사항들을 제시한다. 또한 학술 저널의 발행 윤리 강화를 위해 설립된 국제적 기구인 ‘출판 윤리 위원회’(COPE, Committee on Publication Ethics)의 일원인 MDPI의 국제 저널 어플라이드 사이언스(Applied Sciences)에 실린 종합 논문 '헬스케어 분야 블록체인 기술: 포괄적 검토(Blockchain Technology in Healthcare: A Comprehensive Review)'는 의료 영역에서 블록체인이 어떻게 투명성과 신뢰, 개인정보 보호라는 윤리적 요소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지를 다룬 사례 중심 논문이다.

글로벌 기술 거인들의 ‘신뢰 회복’ 프로젝트

해외에서는 블록체인을 단순한 분산원장이 아닌 ‘신뢰 기계(Trust Machine)’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자사 블록체인 기술 프레임워크인 ‘기밀 컨소시엄 프레임워크(CCF, Confidential Consortium Framework)’를 통해 기업 간 블록체인에서도 기밀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거버넌스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리눅스재단(Linux Foundation) 산하의 '하이퍼레저(Hyperledger)' 프로젝트는 엔터프라이즈급 블록체인 솔루션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접근 제어와 거버넌스 기능을 제공하여 실제로 금융, 의료, 공공기관에서 채택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Deloitte)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공동 발간한 보고서 '블록체인 ‘신뢰 기계’ 재구축하기(Rebuilding the Blockchain ‘Trust Machine’)'를 통해, 신뢰가 회복될 때 블록체인의 가치가 비로소 확장된다고 분석한다. 이 보고서는 기업 전략 관점에서 블록체인 거버넌스의 실질적 설계와 그 경제적 파급 효과를 다룬다.

한국, 정부부터 민간까지 선제적 대응

한국 역시 디지털 거버넌스 시대에 발맞춰 정부 차원의 제도 설계와 민간의 기술 실증을 동시에 추진해왔다. 정부는 '2021~2025 디지털정부 마스터플랜'을 통해, 블록체인 기반 인증, 전자문서, 디지털 신원 시스템을 핵심 과제로 채택했다.

특히 질병관리청과 블록체인랩스(Blockchain Labs)가 공동 개발한 ‘COOV(COVID-19 Vaccination Certification)’는 위변조 방지 기능을 갖춘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백신 인증 시스템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공공 신뢰를 동시에 실현한 대표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도 공공, 의료, 물류 분야에서 신뢰 기반 블록체인 시스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ESG 관점에서의 윤리적 블록체인

블록체인 기술은 ESG 관점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분산원장 기반의 구조는 탄소배출량 검증, 공급망 투명성 강화, 기부 추적 등의 분야에서 이미 현실적 적용 사례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책임과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기술적 선택지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 그리고 이해관계자의 동등 참여 메커니즘은 ESG 원칙을 디지털 거버넌스 체계에 구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ESG를 위한 블록체인 기술의 적용은 단순한 도구적 사용이 아니라, 기술과 윤리가 만나는 접점에서 ‘책임 있는 디지털 사회’를 구축하는 핵심 경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웹3블록체인협회’의 출범은 더욱 시의적이다. 협회는 법무법인 디엘지(DLG)를 중심으로 변호사, 세무사, 변리사, 국내외 블록체인 기업, 금융 · 정책 · ESG · 기술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구성되었으며, 기존의 산업 로비 조직이 아닌 윤리적 생태계 설계자(Ethical Ecosystem Architect)를 자임하고 있다.

협회가 준비 중인 ‘온체인 심포지엄(Onchain Symposium)’과 ‘블록체인 산업 정책 연구 프로그램(BIPS, Blockchain Industry Partnership Series)’은 이론과 정책, 그리고 현장 기술을 연결하는 실무형 공론 플랫폼으로서 기능할 예정이다.

기술보다 신뢰, 경쟁보다 책임

암호화폐의 급등락, 디파이(DeFi) 해킹, NFT 투기화 등으로 대중의 블록체인 신뢰가 훼손된 지금, 단순한 기술력보다 ‘윤리적 거버넌스(Ethical Governance)’가 생존 전략이자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는 블록체인 기업 역시 인공지능 기업처럼 “책임감 있는 혁신(Responsible Innovation)”을 경영의 중심에 둘 필요가 있다.

윤리적 블록체인은 기술 자체의 신뢰를 넘어, 디지털 사회 전체의 공적 신뢰를 재구성하는 인프라이며, 이 구조는 현대 산업 구조의 종합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즉, 기술 · 윤리 · 경제가 결합된 새로운 규범은 금속처럼 단단하고 구조화된 신뢰 기반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한국의 기회, 그리고 숙제

한국은 현재 정부의 체계적인 디지털 전환 정책, 민간 협력 기반의 생태계, 그리고 글로벌 연계 전략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이는 블록체인 윤리 분야에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과제도 명확하다. 규제 불확실성, 업계 간 이해관계, 현실과 정책 간의 간극, 그리고 윤리 기준의 실질적 구현 방안이 아직은 미흡한 상태다. 따라서 협회 출범은 단지 제도화의 출발점일 뿐, 구체적 실천 전략과 사용자 중심의 거버넌스 체계가 함께 따라야 한다.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계약(Social Contract)을 재설계하는 기반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늘 ‘신뢰(Trust)’가 있다. 한국이 이 신뢰를 기술과 윤리로 함께 구축해 나간다면, 세계는 곧 ‘한국표 블록체인 거버넌스’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의 기초는 몽석처럼 단단하고 금속처럼 구조화된 신뢰일 것이다.



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 한국웹3블록체인협회 부회장
이종현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 한국블록체인학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