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지옥이 된 헬조선, 생존 방법 아는 게 나뿐이라면

입력 2025-07-24 17:21
수정 2025-07-25 00:26

10년 넘게 읽어오던 소설이 어느 날 현실이 된다면?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현실이 한 웹소설에 나오는 지옥도로 바뀌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해당 소설의 열혈 독자인 김독자(안효섭 분)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씁쓸히 퇴근하던 날, 그가 탄 지하철은 웹소설 속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지옥철로 변모한다. 다행히 그는 10여 년 동안 외우듯 소설을 읽어온 덕분에 설정과 생존 방법을 이미 터득한 상태다.

하지만 역을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변수가 생기고, 독자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절망한다. 다행히 독자의 곁에는 동료인 유상아(채수빈 분), 이현성(신승호 분), 정희원(나나 분) 등이 있다. 서로의 생존 그리고 무엇보다 공멸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민호 분)의 생존을 위해 이들은 이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더불어 가지고 있는 모든 코인까지.

‘전지적 독자 시점’은 판타지 영화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메타포(비유)가 난무한다. ‘헬조선’으로 부르던 곳이 진짜 지옥이 됐다든지, 그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오로지 코인뿐이라는 설정 등이 그렇다. 이 중 가장 극명한 현실의 메타포는 영화의 주인공 독자다. 그는 학교 폭력에 시달렸으며, 현재는 시스템과 권력의 노예가 돼 질식해 가고 있는 미생(未生)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세계가 지옥으로 바뀌는 순간 독자의 운명도 바뀐다. 이곳에서 그는 왕따가 아니라 선한 무리의 리더로, 코인을 제일 많이 가진 권력자로, 앞의 운명을 꿰뚫고 있는 선지자로 변모한다.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 등을 연출한 김병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전편과 후편, 두 파트로 만들어졌다. 김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스케일이 큰 영화다. 영화 제작비는 약 300억원으로 관객 700만 명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방학 시즌의 메이저 관객층인 중·고등학생에게 어필하기 쉽다는 게 장점이다. 지하철역을 지날 때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고, 이를 위해 코인을 사용해야 한다는 설정은 아케이드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영화에 사족처럼 나오는 신파나 콩트도 없다.

배우 이민호를 포함한 몇몇은 연기 밸런스가 매우 아쉽다. 결정적인 키를 가진 인물이니만큼 연기가 조금 더 유려한 배우를 캐스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산업 침체기에 작게나마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작품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