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에서 호랑나비가 된 소녀…이와이 슌지의 세기말 감성

입력 2025-07-23 18:10
수정 2025-07-24 00:19

일본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 작품의 제목은 대체로 영어이거나 이국적이다. 그의 최대 히트작 ‘러브레터’뿐 아니라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등이 그렇다.

탈(脫)일본적이거나 서구 지향적이라기보다 코스모폴리탄을 지향하는 그의 세계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정신세계의 정점을 드러낸 영화가 지난 16일 국내 재개봉한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다.

이 작품은 엄마를 잃은 소녀 아게하(이토 아유미 분)가 애벌레에서 나비가 돼 가는 성장영화이자, 그의 친구들이 엔타운(yen town)이라는 가상의 빈민가에서 벗어나 주류사회로 나아가는 정서적 로드 무비다. 아게하는 일본어로 애벌레 혹은 호랑나비란 뜻이다.

서사의 기본 줄기는 위조지폐 범죄다. 엔타운에서 살아가는 페이 홍(미카미 히로시 분), 랑(와타베 아쓰로 분), 글리코(챠라 분) 등에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스도라는 조직폭력배가 아게하를 범하려다가 권투선수 출신인 이웃 흑인 남자에게 얻어맞고 창문 밖으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한다. 페이 홍 등은 스도를 땅에 묻는 과정에서 그의 몸 안에 카세트테이프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들은 테이프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듣지만, 사실 이 테이프 안에는 지폐를 위조할 수 있는 비밀 마그네틱 시그널이 들어 있다.

마치 미국 서부 시대의 금광처럼 가장 강력한 화폐 가치를 지닌 엔을 구하기 위해 엔타운에는 이민자가 넘쳐난다. 이들은 영어와 만다린어, 일본어를 뒤섞어 쓰며 밑바닥 인생을 산다. 영화는 언어의 혼란만큼 시각적으로도 꽤 어지럽게 장면들을 흔들어 댄다.

30년 된 이와이 감독의 묵시록적인 예언에 가까운 영화를 보는 것은 다소 당황스럽다. 그는 1996년이라는 세기말 시점에 사람들이 자멸해 가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세상은 그냥 여전히 계속해서 망해 가고 있을 뿐이다. ‘망한 것’보다 더 어둡고 공포스러운 것은 ‘망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현재형이 사람들을 두렵게 만든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