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칼럼
현재 한국 사회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부와 시장, 시민사회 간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에도 고용과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미래세대는 희망을 잃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본질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한 혁신과 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를 바꾸는 새로운 기업가정신이 문제 해결 대안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성공적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왜(why)’와 ‘어떻게(how)’에 있다. 비즈니스의 목적과 실행 방식에 관한 것이다. 유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는 창업가 훈련의 첫 주 동안 “왜 내가 창업을 하고자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비전, 핵심 가치를 명확히 하고 이루어내고자 하는 미래상을 정립할 수 있게 하며, 세상을 바꾸는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기업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기업가 이론인 이펙추에이션(Effectuation)은 몇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자원에서 출발하고, 둘째는 감당할 수 있는 손실 범위를 정하고 시작하며, 셋째는 자발적 참여로 전략적 파트너를 조기에 모으고, 넷째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기회로 바꾼다(레모네이드 원칙). 마지막은 조종사 원칙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행동과 결정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예전에는 “이 세상에서 성공할 사업을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해왔다면, 이제는 “이 사업이 성공할 세상을 어떻게 (함께) 만드는가?”를 물어야 한다. 과거 연장선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지금, 기업가가 창조적 해법을 찾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자발적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공동 해법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중요하다.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환경이 중요하다. 뉴욕의 실리콘 앨리(Silicon Alley)의 사례가 좋은 예다. 뉴욕시는 정부, 기업, 대학, 시민사회가 함께 문제 해결을 주도하며 제도와 정책을 바꿨다. 커뮤니티 기반 네트워크를 만들고, 공공 조달을 활용해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뉴욕시 GDP(국내총생산)와 노동시장 참여율,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76개 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를 운영해 특정 구역 내 민간 주체가 자율적으로 지역을 개선하고 혁신을 촉진했다.
이러한 모델은 혁신이 단순히 시장의 성공이 아니라 도시 문제 해결과 사회적가치 실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가치가 경제적가치와 연결되도록 설계해야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가치를 측정하고 화폐화해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보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자발적 혁신과 사회 참여가 늘고, 이윤 창출과 사회적 혁신의 동시 달성이 가능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지금은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고 실행할 기회다. 기업, 사회, 정부가 협력해 사회적가치를 내재화한 새로운 기업가정신 생태계를 공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기업은 사회적가치를 혁신의 핵심에 통합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하고, 사회는 신뢰와 시민 참여를 통해 기업가정신의 공공적 의미를 확장하며, 정부는 이들 상호작용이 지속가능하게 순환할 수 있도록 제도·정책 설계를 통해 공공 혁신 플랫폼을 구축하는 생태계 설계자로 가능해야 할 것이다.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전 한국경영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