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담합 '썬연료' 태양 대표, 주주대표소송 패소...96억 배상 확정

입력 2025-07-20 11:51
수정 2025-07-20 12:00


전세계 부탄가스 점유율 1위 '썬연료'로 유명한 코스닥 상장사 태양의 현창수 대표이사가 가격담합행위로 인해 회사에 96억66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경영진의 법령위반행위가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줬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96억원이라는 거액의 배상명령이 확정되면서 앞으로 주주대표소송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은 지난달 12일 태양 주주들이 현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위법행위로 얻은 이익을 손해에서 차감하는 것은 범죄를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며 손익상계를 명확히 배척했다.
공정위, 가격담합으로 160억원 과징금 부과
태양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휴대용 부탄가스 제조업체들과 함께 9차례에 걸쳐 가격을 담합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6월 이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판단해 태양에 159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 대표 개인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억500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태양의 소액주주들은 2018년 4월 현 대표의 가격담합행위로 회사가 막대한 과징금을 물게 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또 현 대표가 동종업체인 세안산업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면서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했고, 두 회사 간 시장분할을 통해 사업기회를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위법이익 있어도 면책 안돼"
재판 과정에서 현 대표 측은 가격담합으로 인해 태양의 영업이익이 증가했다며 실질적 손해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한소영)는 2021년 6월 "과징금 및 벌금 상당액의 손해는 가격담합행위 자체로 인해 직접 발생하는 손해가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행위와 국가의 형벌권 행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영업이익 증가와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과징금제도는 가격담합행위로 얻은 불법적 경제적 이익을 박탈해 위법행위를 억제하려는 취지"라며 "담합으로 얻은 이익을 손해에서 공제한다면 위법행위 억제 취지가 몰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명확한 법리를 제시했다. "회사는 기업활동을 하면서 범죄를 수단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이사가 법령을 위반한 경우 회사에 어떤 이득이 발생했더라도 이를 손익상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사의 법령 위반 행위와 회사의 범죄를 조장하고 손해배상 제도의 근본 취지에 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책임 60%로 제한, 겸직은 문제없어
다만 법원은 현 대표의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제한했다. 시장 경쟁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경영수지 악화를 방지하려는 목적이었고, 현 대표의 개인적 이익이 명확하지 않으며, 20여년간 대표이사로서 회사 성장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했다.

반면 현 대표가 동종업체인 세안산업의 대표이사를 겸직한 것에 대해서는 경업금지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법원은 "태양과 세안산업은 동일한 상표의 휴대용 부탄가스를 판매하고 공통의 지원부서를 두는 등 실질적으로 하나의 사업자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라며 "상호 경쟁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두 회사 간 시장분할을 통한 사업기회 유용 주장에 대해서도 "전속적 판매지역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주대표소송 활성화 신호탄
96억원이라는 거액의 배상명령이 확정되면서 앞으로 주주대표소송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액주주들이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경영진의 책임을 효과적으로 추궁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상장사의 경우 주주대표소송 리스크가 커진 만큼 경영진의 법령 준수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이사의 겸직이나 계열사 간 거래에 대해서도 명확한 승인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업들은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규제를 피하는 차원이 아니라 위법행위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