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담합 등 위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에서 거액의 배상 판결이 잇따라 확정됐다. 세계 부탄가스 점유율 1위 ‘썬연료’를 제조하는 태양의 현창수 대표가 가격담합 행위로 회사에 96억66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성신양회 소액주주들이 시멘트 가격 담합으로 발생한 회사 손해를 배상하라며 임원진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45억원을 배상하라며 주주들의 손을 들어줬다. ◇“위법에 따른 이익, 손실 상계 안 돼”대법원 민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태양 소액주주들이 현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법원은 위법행위로 회사가 얻은 이익이 있더라도 이를 손해에서 차감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제시했다.
태양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휴대용 부탄가스 제조업체들과 함께 아홉 차례에 걸쳐 가격 담합을 벌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59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현 대표 개인도 1억5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에 페트라자산운용 등 태양의 소액주주들은 2018년 4월 현 대표의 가격담합행위로 회사가 막대한 과징금을 물게 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현 대표 측은 가격담합으로 영업이익이 증가했다며 실질적 손해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대법원은 “이사가 법령을 위반한 경우 회사에 어떤 이득이 발생했더라도 이를 손익상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사의 법령 위반 행위와 회사의 범죄를 조장하고 손해배상 제도의 근본 취지에 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현 대표가 동종업체인 세안산업의 대표이사를 겸직한 것과 관련해서는 경업금지의무(경쟁업체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태양과 세안산업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사업자”라며 “상호 경쟁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직접 가담 안 해도 감시의무 위반 시 책임성신양회 사건에서는 담합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임원도 감시의무 위반으로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성신양회 소액주주들이 시멘트 가격 담합으로 발생한 회사 손해를 배상하라며 임원진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 모두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김영준 명예회장 등 임원 4명이 총 45억원을 회사에 배상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확정됐다.
성신양회 등 국내 6개 시멘트사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시멘트 가격을 인상하는 담합을 벌였다. 공정위는 성신양회에 427억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법원은 김 명예회장 등이 담합을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지 않았더라도 “대표이사 또는 이사로서 임직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감시·감독의무를 게을리하고,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법조계는 거액의 배상명령이 확정되면서 주주대표소송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정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회사가 위법행위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경우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이익을 명시한 상법 개정으로 법원이 더욱 엄격한 판결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법원은 고의성이 입증된 현 대표의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정했고 직접 가담하지 않은 김 명예회장 등의 책임비율은 10%로 제한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로 더 높은 배상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란/박시온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