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개혁에 베팅’…30배 수익 낸 무라카미의 투자법

입력 2025-08-04 10:56
수정 2025-08-11 08:10
[커버스토리] 무라카미 스토리



‘10년에 12배.’ CLSA증권의 존 시그림은 2025년 5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무라카미 가문의 자산을 최소 6000억 엔으로 추정하면서 무라카미 가문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12배의 수익을 올렸다고 분석했다. 10년에 12배 자체도 놀라운 수익률이지만, 무라카미 가문의 수익률을 좀 더 이른 시기인 2013년부터 추정하면 더욱 눈부시다.

무라카미가 주식 시장에 다시 등장했다고 보도한 일본 주간 경제지 도요게이자이의 2013년 2월 11일자 기사는, 한 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무라카미의 개인 자산을 약 200억 엔으로 평가한 바 있다. 2013년경 일본 니케이225 지수는 평균적으로 1만3000포인트 수준이었던 반면, 2025년 5월 CLSA 보고서 발간 당시 니케이225 지수는 3만8000포인트 정도다. 지수가 약 3배 상승하는 동안 가문의 자산이 30배 상승한 셈이다.



무라카미 가문의 성공을 분석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필자가 무라카미 ‘펀드’가 아닌 무라카미 ‘가문’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투자자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펀드가 아니라 가문의 자금이 최소 6000억 엔이고 그 수익률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다. 왜 무라카미는 펀드가 아닌 가문이 주체가 돼 운영되는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통산성 관료에서 투자자로 변신

무라카미 요시아키는 1959년생이다. 무라카미의 아버지는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했다. 무라카미는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국가를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통산성에서 관료로 16년 동안 일했다. 통산성은 현재의 경제산업성으로 <이토 리포트>를 내는 등 일본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핵심 부서다. 무라카미는 통산성에서 기업 거버넌스에 관한 법과 제도를 만들었고, 덕분에 자기자본이익률(ROE) 중심의 선진 기업 거버넌스를 배울 좋은 기회를 얻었으며, 일본이 성장하려면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필수라는 답을 얻었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조직의 일원으로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 활동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결국 무라카미는 40세가 되던 1999년 주주행동주의를 투자 전략으로 삼은 무라카미 펀드를 만들게 된다.

무라카미 펀드의 등장은 화려했고, 2000년대 초중반 일본 자본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무라카미 펀드는 2002년 도쿄스타일에서 일본 최초로 위임장 대결을 벌였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닛폰방송과 후지TV에 투자했다. 이후 한신철도를 상대로 기업 거버넌스 개선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투자 중 닛폰방송과 후지TV에 대한 투자가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야 시가총액이 작은 지주회사가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사업회사를 여러 개, 심지어 수십 개씩 거느리고 여러 사업을 벌이는 게 워낙 흔해 별다른 문제의식조차 없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구조는 세계적·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구조가 아니다. 닛폰방송과 자회사들의 관계가 그러했는데, 닛폰방송은 라디오방송국으로 매출이나 성장성도 크지 않음에도 후지TV를 비롯한 자회사들을 거느린 이상한 구조였다. 심지어 손자회사로 산케이신문까지 있었다. 닛폰방송의 시가총액은 저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었고, 후지TV의 기업 가치 역시 닛폰방송의 시가에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규모도 작고 역량도 부족한 모기업이 방대한 그룹의 자산과 사업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무라카미는 이들을 설득해 그룹의 공동 지주회사를 만들고자 했고, 차선책으로 후지TV 중심으로 다른 상장 기업을 비상장화하는 거버넌스 개선을 추구했다. 여러 관련 기업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후지TV는 2005년 1월 닛폰방송에 대한 공개매수를 발표했다.



후지TV 스캔들, 체포된 ‘신의 손’

한편, 당시 일본 인터넷 기업 라이브도어의 사장 호리에 다카후미는 방송국을 인수해 미디어 분야에 진출하고 싶어 했다. 무라카미는 닛폰방송과 후지TV를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 라이브도어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후지TV가 닛폰방송에 대한 공개매수를 발표하자 호리에 사장은 무라카미에게 전화해 “이제 닛폰방송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 뭔가 라이브도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무라카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이 통화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아 라이브도어는 리먼브라더스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 닛폰방송의 지분 35%를 취득하면서 후지TV와 지배권 경쟁을 벌인다.

이때 검찰은 호리에 사장에게서 들었던 하소연을 대량 지분 취득에 관한 내부자 정보로 판단했고, 호리에와의 통화 이후로도 거래를 이어갔던 무라카미가 체포됐다. 당시의 일은 우리나라 언론에도 보도돼, ‘日서 폭풍 일으켰던 무라카미 펀드 결국 해산’, ‘'神의 손’ 무라카미 펀드매니저에 3년형’, ‘日 검찰, 펀드 업계 ‘신의 손' 무라카미 수사’, ‘어쩐지 너무 잘나가더라…일 재계 풍운아들의 부서진 꿈’, ‘기업 사냥꾼 무라카미의 몰락’ 등의 제목으로 기사가 남아 있다.



무라카미는 최고재판소에서 집행유예의 유죄판결을 받았고 일부 실형도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호리에 사장이 한 수준으로 추상적이고 막연한 말이 어떻게 내부자 정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무라카미 본인도 저서 <평생 투자자>에서 국가 기관의 판단이니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오로지 자신에게만 적용된 판결이 아니었을지 의심하고 있다.

변호사이자 투자자로서 이 사건을 피상적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불합리한 구조는 불합리한 구조로 이익을 얻는 주체가 있기에 유지된다. 기득권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닛폰방송, 후지TV, 산케이신문 사이의 불합리한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무라카미가 수십 년 된 일본의 기득권에 도전하던 중 무리하게 단죄됐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지TV와 같은 거대 언론사는 외형상의 시가총액과 무관하게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버거운 상대다. 당시만 하더라도 버블 경제가 붕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다. 일본 사회는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해야만 일본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라카미의 주장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이런 주장을 이해하거나 도와줄 만한 목소리도 적었다.

일본 기업의 폐단을 정조준

필자는 지난해 2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니케이신문의 고다이라 기자에게 일본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부러워하며 만약 일본의 주주행동주의를 공부한다면 어디부터 공부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그때 고다이라 기자는 무라카미 요시아키를 추천했는데, 무라카미가 일본 거버넌스 개혁의 선구자이며, 그가 과거에 했던 주장이 결국 현재 일본에서 수용됐다는 이야기,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인 주주행동주의자들은 외국계와 일본 토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일본 토종 주주행동주의자들의 주류는 과거 무라카미 펀드에서 활동했던 동문들(alumni)이 상당수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나는 사실 무라카미가 후지TV 사건으로 체포됐다는 기사까지만 알고 있었기에 이 이야기에 놀랐다.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의 일본은 달랐다. 제로(0) 성장이 너무도 오래 지속되자 변화를 거부하던 일본도 더 이상 구조 개혁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전까지 일본 기업은 상호주로 철옹성을 쌓고 그 안에 안주했다. 12개의 기업이 서로 5%씩 지분을 보유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 각 기업은 저마다 55%의 우호 주주를 얻게 된다.



이 정도의 우호 주주가 존재하면, 이제 외부의 압력은 무시해도 무방하다. 일본에서 특정 기업이 보유한 다른 기업의 상호주는 정책보유주로 불린다. 정책보유주를 보유한 특정 기업은 다른 기업에서 안정 주주가 된다. 자본이 효율적이든 아니든, ROE가 나오든 안 나오든, 서로 상호주를 보유한 채 서로가 서로의 안정 주주가 되면 경영진은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할 수 있다. 좋게 보아 장기적 관점에서의 경영이지, 솔직히 말해 안주하는 경영이다. 한때는 성공방정식이었고 고도 성장의 기반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시대가 변화하자 일본의 구조 개혁을 가로막는 악습이 됐다.

무라카미는 <평생 투자자>에서 “주가가 낮은 상태에서 벗어나든 말든, 자산 효율이 낮든 말든,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경영진이 직접 자사 주식을 보유하고 주가를 책임지는 일이 없는 일본 기업의 폐단이 여실했다. 당시는 유명한 상장 기업들도 대부분 이런 수준이었다”며 안주하는 경영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안정적으로 출근’(?)이라는 말에 왠지 일본답고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참으로 신랄한 비판이다.

‘무라카미가 옳았다’…열도 흔든 밸류업 열풍

일본이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간 건 자본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자본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던 건 기업 거버넌스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이런 현실을 개혁하려고 할 땐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비효율적 자본 활용은 사실 비효율적 자본 활용으로 이익을 보는 기득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고 무라카미 본인도 체포돼 일부 실형까지 살게 된 셈이다.

정부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시작된 2010년대 중반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검찰의 수사로 딸인 노무라 아야가 유산하는 일도 있었다. 본인이 감옥에 간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딸이 유산해 오열했을 때 무라카미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과 함께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무라카미의 메시지를 결국 수용했고, 기업 거버넌스를 개혁했다. 2012년 12월 아베 2차 내각이 들어선 이후,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기업 거버넌스 개혁 노력을 지속해 왔다. 2013년 8월 히토츠바시대의 이토 쿠니오 교수를 좌장으로 한 구조 개혁을 위한 연구 모임이 조직됐고, 2014년 스튜어트십 코드가 제정되고 <이토 리포트>가 발표됐으며, 2015년 기업 거버넌스 코드가 제정됐다. 이들 리포트와 코드는 이후로도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일본거래소도 열심히 했다. 2022년 1부, 2부로 나뉘어져 있던 시장을 수준에 따라 프라임과 스탠더드, 그로스로 나누었다. 프라임 시장에 속한 기업이 되려면 더 큰 노력을 각오하도록 하는 식으로 변화를 유도했다. 일본거래소는 2023년 3월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발표했고, 이는 우리나라 밸류업 정책에 참고가 됐다. 통상산업성은 2023년 8월 기업 매수에서의 행동 지침을 내놓았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우군으로 주주행동주의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이치고 에셋매니지먼트의 스콧 칼론 회장은 <이토 리포트>의 작성에 참여했다. 서드포인트의 다니엘 롭은 총리와 미팅에 초대되기도 했다.

이런 변화 속 무라카미는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선봉에 서서 큰 부를 일구었다. 무라카미 가문뿐만이 아니다. 과거 무라카미 펀드에서 일했던 동료들도 에피시모 캐피털, 스트래티직 캐피털 등을 설립해 거버넌스 개혁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역시 큰 성공을 했다.

무라카미 리턴즈…주주행동 성공률 100%

2025년 7월 11일 후지미디어홀딩스의 주가가 급등했다. 후지미디어홀딩스는 11년 전 무라카미의 노력으로 설립된 지주회사로 닛폰방송과 산케이신문을 거느리고 있다. 후지미디어홀딩스의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전날 무라카미 가문이 후지미디어홀딩스의 지분을 15.06%에서 16.32%까지 늘렸기 때문이다. 후지미디어홀딩스의 시가총액은 약 8800억 엔으로 16.32%의 지분 가치는 약 1430억 엔에 달한다. 약 10년의 세월을 지나 후지미디어홀딩스에 무라카미가 돌아온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콜마홀딩스에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달튼 인베스트먼트도 후지미디어홀딩스의 지분 7.51%를 보유하고 있다. 달튼은 후지미디어홀딩스에 부동산 부분의 분사를 주문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위임장 대결까지 벌였다. 후지미디어홀딩스는 산하에 산케이빌딩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데, 산케이빌딩은 오피스와 주택뿐만 아니라 호텔과 수족관까지 다양한 부동산 사업을 벌이는 중이다. 달튼에 의하면 보유 부동산 부분의 가치만 약 7000억 엔에 달한다.

무라카미 가문의 매수에 비상이 걸린 후지미디어홀딩스는 무라카미 가문의 지분율이 20%를 넘기는 경우를 대비해 포이즌필까지 사용할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무라카미 가문의 주주행동주의 성공률은 현재까지 100%다. 이건 존 시그림의 CLSA증권 보고서에도 언급되는 이야기이고(단, 1건만은 성공인지 실패인지 애매하다고 함), 필자 역시 무라카미 가문 관계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 관계자는 “우리는 항상, 100% 성공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는데, 말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이 대단했다. 한편으로 100% 성공은 현재 일본 거버넌스 관련 법 제도가 주주친화적인 토대 위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에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해 시샘도 났다. 물론 이런 법 제도를 가꾸기에는 감옥에도 다녀온 무라카미 요시아키를 비롯한 선구자들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무라카미의 투자법을 추종하는 사람들

어쨌든 무라카미는 분명 거버넌스를 개혁하려는 가치지향적인 펀드를 만들었고, 더 이상 펀드를 할 수 없게 된 때에도 개인 자금으로 일관되게 노력했다. 가치지향적인 투자는 돈을 버는 것과 무관할 것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자본의 비효율을 거두어 내는 활동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기에 앞장서서 활동한 투자자는 더 큰돈을 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이로운 외부효과를 창출하면서도 주주행동주의 투자 전략이 성공할 수 있는 요체가 여기 있다.

무라카미 본인과 과거 동료들이 모두 큰 부자가 됐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일본엔 무라카미의 투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주행동주의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주행동주의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다.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다. 자본을 더욱 효율적, 생산적으로 만들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며, 심지어 이런 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아름다움이고 미라클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상법을 개정했다. 심지어 더 강력한 상법 개정이 예고된 상태며, 자사주 의무 소각도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일본도 기업 거버넌스의 기반이 되는 상법을 개정하지는 않았다. 무슨무슨 코드, 리포트, 가이드 등을 개정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상법 개정은 상법 개정에만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자본주의 원리상 당연하며, 예측이 가능하다. 거버넌스 개혁으로 높아진 주가와 기대는 투자자들로부터 더 큰 기대와 희망을 불러 모으고, 이런 투자자들의 바람은 정책 압력이 돼 더 큰 거버넌스 개혁을 부른다. 반대로 주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의 힘은 약해지기에 긍정적인 피드백 고리가 형성된다.

일본 역시 거버넌스 개혁이 몇 년간 지속되자 시장의 힘은 점점 더 쎄진 반면, 기득권의 힘이 거듭 약해졌다. 어느 순간 안정적으로 출근하고 싶은 마음도 결국 포기하게 됐을 것이다. 해외 투자자로부터 이제는 일본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도 받았다. 일본이 스스로 다리를 불살랐다는 표현을 본 적도 있다.

한국은 또 다른 투자 기회?

일본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 과정에서 큰돈을 번 펀드와 투자자들은 한국에서 일본을 연상한다. 미국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자본시장 중 일본 수준으로 장기간 구조적 상승을 보여준 시장이 잘 없다. 그 경험이 너무도 강렬하기에 잊고자 해도 잊을 수 없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주주행동주의 전략을 사용하는 운용사들은 요즘 해외에서 주주행동주의 투자를 해 왔던 운용사와 연기금, 각종 재단이나 대학의 기금, 여러 패밀리오피스로부터의 투자 문의에 대응하느라 바쁘다.

결과적으로 기업 거버넌스가 개혁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외형상 보이는 결론은 비슷하지만, 실체는 매우 다르다. 일본은 20년이 넘어가는 제로 성장을 견디다 못해 정치와 관료, 금융 시장의 엘리트들이 위로부터 아래로 개혁했다. 우리나라는 1400만 개인투자자의 에너지가 응축돼 아래에서 위로 개혁했다. 1400만 개인 투자자 중 상당수가 해외 투자를 경험하면서 선진 거버넌스에 눈을 떴고, 누적된 학습이 개혁의 에너지로 전환됐다. 우리나라 쪽이 개혁의 기반과 에너지가 더 강하며,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장래가 더 밝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있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많은 우리 국민이 재벌 체계가 유용하고 유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선진국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 다시 비슷한 합병을 시도하면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이 변했다. 오래된 재벌 체제로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최근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은 자본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깨어 있는 투자자에게 돈을 벌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운을 턴어라운드 길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심혜섭 심혜섭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평생 투자자> 감수 및 해제